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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위의 실수 연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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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나현철 경제부 기자

금융감독위원회가 또다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금감위가 1월 27일 부산 플러스저축은행에 대해 내린 영업정지 및 경영개선 명령이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이다. 서울지방행정법원은 22일 저축은행 대주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금감위가 정식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면결의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금융감독기구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또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절차를 생략한 것은 행정절차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금감위는 24일 부랴부랴 임시회의를 열고 다시 영업정지와 경영개선 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제대로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하지만 금감위의 '절차상 잘못'이 남긴 후유증은 결코 적지 않다.

우선 지난 6개월간 예금을 찾지 못했던 고객들은 앞으로 반년간 또다시 재산권 행사를 제한받게 됐다. 이 저축은행의 고객은 2만4000여 명, 예금액은 4500억원에 이른다. 예보가 예금보험기금을 통해 고객 1인당 최고 1500만원씩 내준 가지급금의 처리도 모호해졌다. 예보 관계자는 "이미 돈은 나갔는데 근거(기존 경영개선조치)가 사라져 난감하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의 정상화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금감위는 앞으로 한 달간 대주주에게서 경영개선계획을 제출받는 등 이 저축은행을 정상화하거나 청산하기 위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가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한 셈이다.

금감위의 이런 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금감위는 1999년 8월 D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감자 및 주식소각 명령을 내렸다가 대주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했다. 법원의 판결 이유도 이번과 똑같았다. 이 때문에 D생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매각은 몇 개월씩 지연됐다.

금감위 관계자는 "부실 사실이 알려져 예금 인출 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다 절차상 하자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감위의 이런 노력은 구조조정을 오히려 몇 달간 늦추는 결과를 불러왔다.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는 만큼 혹시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나현철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