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언덕에서 태어난 와인, 파랄렐 45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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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자불레, 코트 뒤 론 파랄렐 45

누군가가 우리나라 음식과 대중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 한 가지만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프랑스 론 지역의 와인 중 하나를 고를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첫째, 자극적인 각종 양념을 사용하는 우리 음식과 여러 품종을 섞어 만드는 론 지역 와인은 다른 와인들에 비해 하모니를 이루는 폭이 넓다는 데 있다.

어떤 와인들은 단맛이 있는 불고기와 잘 어울리지만 약간 매운맛이 있는 닭볶음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음식과 와인을 서로 조화시키려면 음식에 따라 여러 와인을 준비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런 점에서 론 지역 와인은 한 종류의 와인으로 다양한 맛과 함께할 수 있어 일반 가정에서 하우스 와인으로 사용하기 좋다. 두 번째로는 강한 개성을 지닌 와인을 만드는 대표 품종인 시라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와인 애호가들은 좀 진한 맛을 선호하는데 론 와인들이 시라와 그르나슈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어 풍미가 좋고 진한 맛이 난다.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와인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바로 오늘 소개하는 폴 자불레 파랄렐 45 레드 와인이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파랄렐 45 와인을 생산하는 폴 자불레 와이너리는 지금부터 180년 전(1834년) 앙투안 자불레에 의해 설립되었다. 프랑스 론 지역의 와인만을 생산한다는 철학 아래 가족 와이너리로 출발해 이 지역의 맹주 자리까지 오르면서 가장 성공한 와이너리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20세기 최고 와인 12선에 폴 자불레의 톱 와인 ‘라 샤펠’이 뽑혀 유명세를 더했다. 현재 폴 자불레는 북부 론과 남부 론에서 지역별 특성을 갖고 있는 28가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최대한 줄여 포도의 품질을 높이고 맛과 향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 다른 와이너리보다 좀 더 오랫동안 발효를 하고 색을 뽑아내는 작업을 한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축적된 기술을 모든 와인에 적용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기술을 이용해 만든 파랄렐 45 와인은 폴 자불레의 가장 기본적이며 대중적인 와인으로 남부 론 지역(Cote de Rhone)에서 생산되고 있는 와인이다. 일반적으로 북부 론 지역은 강한 와인을 만드는 시라 품종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론 강을 끼고 있는 가파른 언덕에 많은 포도밭이 있다. 반면 남부 론은 언덕보다는 평지에 먼 옛날 론 강에 의해 퇴적되었던 자갈이나 점토, 모래들로 구성된 포도밭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고 온도가 높아 시라 품종보다는 섬세하고 조밀한 맛을 지닌 그르나슈 품종을 재배하는 데 유리하다. 때문에 파랄렐 45 와인 역시 이 지역의 대표작인 그르나슈(60%)와 시라(40%)를 섞어 만들었으며 중간 정도의 보디를 갖고 있어 편한 와인이고 생산 후 1~3년 내에 마시면 좋다. 이 와인의 레이블에 나타나 있는 파랄렐 45는 글자 그대로 위도 45도를 나타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위도이기도 하고 폴 자불레에서는 남부 론과 북부 론을 가르는 경계 위도를 표시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레이블을 자세히 보면 45 숫자 밑 그림에 세계 지도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랄렐 45 와인은 대부분의 육류와 잘 어울리며 특히 매콤한 양념을 한 음식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 예를 든다면, 매운 갈비나 낙지볶음, 황태찜 등 양념이 강한 요리에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시음에서는 남부 론의 스파이시한 풍미가 코끝을 스치면서 붉은 과일 향과 부드러운 타닌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시원한 온도(16~18℃)에서 마시면 더욱 선명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대중적인 맛과 저렴한 가격 덕분인지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론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남부 론 지역 와인의 최고봉은 교황의 와인이라 불리는 샤토뇌프 뒤 파프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주변에 방대하게 펼쳐진 포도밭들이 바로 코트 드 론 지역의 포도밭이며 수많은 생산자가 와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모든 와인들이 품질과 가격에서 소비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장보기에 까다로운 손님들에게 충족감을 줄 수 있는 와인은 더욱 찾기 쉽지 않다. 오늘 저녁 파랄렐 45 와인 한 잔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 시원하게 올려놓은 와인은 오픈하는 순간부터 남부 론의 풍부한 향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저녁 내내 즐거운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구나, 연인이나, 감정이 굳어진 부부에게도.

폴 자불레, 코트 뒤 론 파랄렐 45 (Paul Jaboulet Aine, Cotes du Rhone Parallele 45)
원산지 프랑스 품종 시라 40%, 그르나슈 60% 적정 시음 온도 16~18℃ 알코올 도수 14% 가격 2만8천원(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음) 판매처이마트·홈플러스 등 마트 및 주요 할인매장

김혁은… 와인 컨설턴트 겸 칼럼니스트. 복합 와인문화 공간인 포도 플라자 관장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와인과 와인 산지 이야기를 비롯, 다양한 와인 정보를 담은 홈페이지(www.kimhyuck.com)를 운영하고 있다. 매달 가격 대비 맛과 균형이 훌륭한 밸류 와인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아주고 있다.

기획 = 오영제 레몬트리 기자, 글 = 김혁, 사진 = 김용훈(JE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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