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코메리칸의 놀라운 생명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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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유럽에서는 '미국에서 돌아온 삼촌'이라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내용인즉슨 미국으로 건너간 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삼촌이 벼락부자가 돼 어느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일가 친척의 고생을 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최소한 미국에 건너가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 앞부분은 현실이 된다는 점에서 이 '신화'와는 차이가 있다.

***한인 2세대 소득, 美평균 1.4배

한인의 미국 이민은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백년 전 시작됐다. 이 노동 이민은 1905년 일본의 압력에 의해 중단됐지만 이후 한인들은 다른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국의 정치적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하와이에 눌러앉은 뒤 대부분 도시로 들어가 장사를 시작했고, 70년 무렵에는 하와이의 인종 중에서 최고소득층.최저 실업률 계층이 됐다.

하와이 초기 이민자 중 미국 본토로 옮겨간 이들은 2천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주로 서부 해안 지역에 자리잡았다. 캘리포니아 중부의 농장에 정착한 수백명은 수완을 발휘해 농업을 통해 사업을 일으켰다. 이런 한인들은 해외에 머물던 이승만이나, 안창호.박용만 같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에게 주요한 자금원이 됐다.

본격적인 미국 이민은 65년 미국이 이민 제한을 완화하면서부터로 볼 수 있다. 당시 한인 이민자의 대부분은 화이트칼러 계층이었지만 미국에 들어온 이들은 영어가 부족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은 직업을 바꿔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기존의 한인 가게들을 사들여 장사에 나섰다. 뉴욕.로스앤젤레스.시카고 같은 대도시에서 한인들이 청과상.세탁소 같은 업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한인들도 별도 분류해 조사하기 시작한 60년 이후로 보면 한인들의 숫자는 급속하게 증가했다.

한인 이민자들은 60년 약 1만1천명에서 2000년에는 미국 인구의 0.4%에 달하는 1백여만명으로 급증했다. 미국 이민귀화국에 따르면 한인 이민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87년으로 당시 3만6천여명이 미국에 들어왔다.

이후 이민자 숫자는 줄기 시작해 당시의 절반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인들의 미국 이민은 서유럽으로부터의 이민과 동일한 과정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한인들의 3분의1 이상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으며 이곳 인구의 1% 정도를 점한다. 다음이 동부의 뉴욕이며 뉴저지.일리노이.워싱턴 순이다. 인구 비율로만 보면 하와이가 가장 높은데 하와이에서는 한인들이 인구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인들의 평균 가계소득과 일인당 소득은 각각 5만달러, 2만달러로 미국 전체 평균(각각 5만1천2백달러, 2만6천달러)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다.

한인 중 대졸 이상 학력자 비율은 미국 전체의 대졸 이상자 비율 26.8%의 두 배에 가까운 49.2%나 된다. 한인 이민 2세대로 넘어가면 이 수치는 수직상승한다. 2세들의 평균 가계소득은 7만달러로 전체 평균보다 40% 이상이다. 대졸 이상 학력자의 비율도 54.7%로 전체 평균의 두배 이상이다.

***뿌리내린 지역의 발전 이끌어

한인들의 기업 종사자 비율도 미국 전체 평균보다 높다. 또 이민자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한인들의 경제 활동은 유별나게 높은 저축률.자본축적을 잘 보여준다.

80년과 90년의 인구조사 자료를 비교해 보면 한인들의 저축률과 자산축적률은 미국 전체 평균의 두배 정도에 이른다.

최근 국제경제연구소에서 출판한 '세계 경제 속에서의 한국인의 이민'이라는 책에서 내가 밝힌 바와 같이, 통계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이민자의 비율이 두배로 늘어나는 것은 미국 국민의 일인당 소득이 0.1~0.2%포인트 증가한 것과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부유한 미국의 삼촌이 고향으로 돌아와 일가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 대신 미국에서는 아마도 부유한 코리안 아메리칸 삼촌이 제2의 고향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커스 놀랜드 미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채병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