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그 정체와 생리 |총 규모 1조 원 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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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재 우리 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사채 규모는 약 1조l천 억∼1조2천 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규모는 어디까지나 추산이고 확실한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또 사채규모는 수시로 변한다.
한국은행의 분석으로는 80년 6월 말 현재 기업의 사채규모를 8천5백39 억 원. 사채동결을 단행했던 8·3조치 (72년 8월 3일) 당시의 지표와 그 동안의 거래관습 등 변화 요인을 감안해서 추정해 볼 때 △통화에 대한 비율로는 6천6백45억 원 △ 총통화에 대한 비율로는 8천5백작 억 원 △민간 신용에 대한 비율로는 1천8백17 억 원에 달한다.
한은은 이 같은 지표를 근거로 하고 여러 가지 변동 요인을 감안해 80년 6윌 말 현재 사상규모를 8천5백여 억 원으로 추정했던 것이다.
한편 한국 경제연구원 (원장 송인상)은 3일 발표한 『한국의 사상 금융시장에 관한 연구』 에서 81년 말 현재 사채규모를 약 1조1천 억 원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추정치는△국제 통화기금 보고서를 근거로 한 추정치 (1조9백10억 원) △ 「8· 3조치」사채 보고자료를 근거로 한 추정치(1조1천88억 원) △시중 사채업자의 추정치(1조∼1조2천억 원)등을 감안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연구원이 추정의 자료로 삼은 △IMF 보고서△8·3조치 △시중 사채업자의 추정 등 3가지 추정치가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려나 72년 8·3조치 때 정부는 사채 규모를 최고 1천억 원 정도로 추산했으나 실제 신고된 사상 규모만도 자그마치 3천5백억 원에 달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요즘 사상 규모가 1조l천억 원 남 것이라면 1개 시중 은행의 대출금 1조6천억 원보다는 적다.
그러나 사분 위력은 시중 은행의 대출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채는 대부분 기업이 금전을 필요로 할 때 융통되는 단기자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위력은 매우 커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다.
사상 시장은 나름대로 확연한 질서 속에 움직이며 특히 전주는 철저한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채 자금은 철저한 점 조직을 통해 4∼5개의 단계를 거쳐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다.
또 대기업의 경우 회사 간부나 친지의 돈을 직접 얻기도 하는데 위장 사채와 영향력 있는 사람의 돈을 늘려주는 교제 사채도 있다, 1조 l천억 원의 지하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의 모습은 좀처럼 알 수 없다.
한국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큰손들은 대부분이 비합법적 수단으로 돈을 모은 사람들로『통설로는 전·현직 고급 공무원, 정치인 및 기업인의 사재, 그리고 각종 공익재단』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채 업자들은 은행을 앞지르는 정보망을 가지고 기업의 속사정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 사채업자들에게 한 번 적색 업체로 낙인찍히면 돈줄이 끊어지고 도산의 비운을 맞기도 한다.
사채 업자들의 돈은 은행이나 단자회사를 중간 거점으로 삼지만 부동산이나 증권 등으로 필요에 따라 이동한다.
사채는 때론 투기 자금 화하고 특히 공공연한 탈세를 한다는 점에서는 경제를 교란시키는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재무 구조가 나쁜 거면, 특히 일시적인 단기 융통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는 구세주 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은행이나 단자에 비해 경제 원리에 한층 충실한 자금이기도 하다.
그 동안 정부는 61년 6월 10일 군사혁명정부의 농어촌 고리채 정리와 72년 8월 3일에 사채동결 령을 발동, 사채를 뿌리 뽑으려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경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순리로 풀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준 것이다.

<박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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