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노사 협상 왜 눈치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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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정책사회부 기자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내걸어 타협이 불가능하다." "사용자 측이 교섭에 참석하지 않거나 집단 퇴장하는 등 성실하게 교섭하지 않았다."

20일 시작된 병원 파업을 놓고 노사 양측은 파업에 이른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느라 바쁘다.

사용자를 대표한 병원협회 측은 노조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의 특성상 불가피한 토요 외래진료를 없애고, 임금을 너무 많이(9.89%) 올리자고 해 접점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사용자 측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난한다. 8일 직권중재에 회부될 때까지 14차례 진행된 산별교섭에서 사측은 세 차례나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고, 집단으로 퇴장한 일도 다섯 차례였으며, 요구안 심의를 두 차례 거부하는 등 열 번이나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이다. 협상을 노무사에게 위임하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파업이 시작된 20일에도 노조는 재차 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노동부 안에서도 사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측이 자율교섭보다 직권중재에 너무 기대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22일 발표될 직권중재안이 사측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은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17일 파업이 시작된 아시아나항공 노사도 마찬가지다. 파업 이후 사흘 동안 노사는 아예 얼굴조차 맞대지 않았다. 닷새째인 21일 처음 만났으나 단 두 시간 만에 헤어졌다. 쟁점 사안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타결 방식을 두고 논란을 벌이다 상황이 종료됐다. 22일 협상도 마찬가지였다.

노사 모두 국민을 담보로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사용자 측은 노조가 여론의 압박에 밀려 항복하기를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제라도 노사가 대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 줄 것을 기대한다.

김기찬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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