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색 다른세상] 빨간 입술의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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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에버랜드에서 백합축제가 한창이다. 흰 백합 물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 사람은 안다. 백합은 고귀함과 순결을 나타내고 알레르기 증상을 억제해 심신의 저항력을 높여준다.

꽃의 아름다움은 색에서 온다. 흰 백합은 흰 백합이어서, 붉은 장미는 붉은 장미여서 아름답다. 사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다른 식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다. 꽃의 번식은 벌이나 나비 등 꽃가루를 퍼뜨려주는 곤충에 의해 좌우된다. 즉 꽃이 대를 이어 번식하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벌이나 나비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꽃은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색으로 계속 진화해 왔다. 그러면 벌이나 나비 등의 곤충은 과연 색을 식별하는가. 동물은 각 동물 나름대로 색의 세계가 따로 있다.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폰 프리츠는 꿀벌이 색을 구별하는 눈을 가졌는지 실험했다. 결과는 인간과 다르지만 꿀벌도 색을 식별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꽃을 보자. 대부분의 꽃은 빨강.노랑.흰색이 많다. 곤충의 눈에는 빨강.노랑.흰색이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경쟁력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가령 빨강은 꿀벌에게는 또 다른 색으로 인식되지만 가장 유혹적인 그 어떤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한낱 풀이나 나무까지 자손을 번성시키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고 곤충을 유혹하며 진화해왔다면 사람의 꽃인 여성들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가. 여성들이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을 하고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신의 선물이다.

화장술의 발달과 함께 붉은 입술과 짙고 푸른 눈자위는 아름다운 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붉은 색은 섹스의 상징이고 짙푸름은 연민과 슬픔의 색이다. 여성들의 화장술 역시 세상의 관심을 끌고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이처럼 진화해 왔다. 동서고금의 모든 여성은 사랑을 찾고 지키기 위해 화장을 했다.

사랑을 위한 뛰어난 화장술로 한 세기를 풍미했던 여성이 퐁파두르 부인이었다. 그는 루이 15세의 애인이었다.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녀가 아름다운 것은 특이한 화장술 덕분이었다. 그녀는 짙고 검푸른 눈자위에 포인트를 두었다. 당시 눈자위가 검푸르게 변하는 것은 피로하거나 간기능이 떨어진 징후로 알려져 있었다. 아무리 퐁파두르 부인이 아름답다 해도 권력의 정상에 있는 왕이 언제 그를 떠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루이 15세로 하여금 애처로운 연민의 정이 지속되도록 짙은 눈 그늘로 슬픔을 그려넣은 것이다. 뛰어난 화장술 덕분에 퐁파두르 부인은 오랫동안 루이 15세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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