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7) 제78화 YWCA 60년(3) - 조선여자기독청년연합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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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경세계기독학생대회에서의 크나큰 소산은 다른 나라 YWCA대표들을 만나 그동안 생각해온 한국YWCA 창설에 대해 구체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두 사람은 미국YWCA대표에게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한국에도 YWCA를 둘 수 있는지에 대해 의논했다.
그들은 우선 이 대회에 일본 YWCA총무 가와이(천정)씨가 참석했으므로 그를 만나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김필례씨는 가와이 총무를 만나려고 몇번 그의 숙소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고, 비서에게 부탁해보았으나 너무 바빠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그래도 끈질기게 기다려 결국 가와이 총무를 만났다.
가와이 총무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단독가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한국이 세계YWCA의 일원이 되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가와이 총무로부터 될 수 있는 한 협조할 것을 약속받고 회의를 끝내고 귀국했다.
북경에서 돌아온 김필례 김활란씨는 그때부터 YWCA조직을 서두를 것을 결심하고 우선 지방순회 길에 올랐다. 5개 도시를 방문하고 11개 여학교를 찾아 여자기독청년회를 조직하게 하고 회원을 모집하도록 했다.
22년6월13∼24일까지 12일간 첫번 하령회를 가졌다. 장소는 충정로에 있는 협성여중학교였다. 참가인원은 각 여학교와 지방으로부터 온 65명이었다. 강사로는 YMCA총무 신흥우씨와 이사 홍병선씨 등 당시 사회에서 이름있는 이들이 초빙되었고 강의내용은 사회학·심리학·윤리학 등 다양하고도 진지한 것들과 의상개량 같은 실질적인 강좌도 있었다.
주제연사는 이화학당 당장인 아펜젤러씨로 『세계의 여성들의 책임』이란 제목으로 참가자들에게 세계로 향하는 비전을 넓고 깊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크나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 하령회의 중요한 프로그램은 신앙생활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기도회와 성경공부였다.
또한 당시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었던 축첩과 이혼·공창문제도 토의안건으로 다루어졌다.
이때 명칭을 「조선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라고 정했다.
「조선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는 해방될 때까지는 물론이고 해방후에도 몇해 동안 「조선」이 「대한」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여자기독교청년회」로 불렀다.
이 기관이 국제기관으로 일반에게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YWCA라고 해야 더 쉽게 알아듣게 되면서 이제는 「여자기독교청년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YWCA와 관련을 가졌던 분들 중에는 「여자기독교청년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적하지만 YWCA가 일반에게 쉽게 이해가 되니까 도리없이 YWCA가 공통용어가 되고 말았다.
다시 1922년6월에 있었던 첫번 하령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하령회가 끝나는 날 여기에 참석했던 65명의 대표회원들은 2주일동안의 수양회 겸 대회의 성격을 띤 이 회의를 감격적으로 끝내고 회의명칭을 『조선(Korea) 여자(Women's) 기독교(Christian) 청년(Young)회(Association) 연합회(National Committee)』로 하기로 하고 임원까지 뽑았다.
이렇게 해서 연합회가 먼저 탄생하게 된 셈이다. 원칙에 어긋난 것이 몇개의 지방YWCA가 연합하여 협의체를 이룬 기구의 통칭이 연합회인데도 한국YWCA는 뒤바뀌었지만 연합기구가 먼저 설립되고 지방YWCA가 뒤에 조직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서울YWCA, 광주YWCA가 조직되었다.
서울Y가 1922년12월 중동교회에서 창단됐고 이사진이 결정되었으며 사업으로는 무교동에 여성근로자 기숙사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필자는 그때가 보통학교(국민학교) 2학년 때였으며 어머님이 이사의 한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자기독교청년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무교동 기숙사는 어머니가 주장하셨던 일로 어머니와 함께 몇번 갔던 기억도 있다. 기숙사는 내 기억에 4∼5년정도 지속했을 뿐 경영할 힘이 없어서 없앤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필자도 서울YWCA 창설 때부터 간접으로나마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러한 관계가 YWCA의 자원봉사자로서 평생동안 일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한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던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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