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씨<프로야구 MBC청롱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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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게 탄 얼굴, 매섭게 빛나는 두 눈에서 끈기의 집념을 읽을 수 있다.
프로야구 2천 게임 출전의 대기록을 세운 MBC청룡의 백인천 감독. 불혹의 40이지만 지칠 줄 모르는 야구에의 정열은 20대에 못지 않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1천9백69게임, 한국 프로야구에서 6월12일 대 OB전으로 31게임 등 모두 2천 게임 출전이라는 값진 기록을 세운 그는「끈기의 사나이」다. 일본에서 2천게임에 출전한 선수는 지난해까지 장훈(2천7백52)을 비롯, 모두 16명뿐이다.

<20년간 사흘에 한 게임>
『일본에서 배우고 익힌 프로야구의 모든 것을 고국 한국의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고싶다』 고 말해온 그는 대망의 2천 게임의 기록을 한국의 그라운드에서 이루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19년을 보내고 한국에서 20년째의 야구생활을 맞은 그는 한국프로야구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아무런 욕심도 없습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 마지막 힘과 정열로 체력이 다할 때까지 모범을 보여주겠습니다』
인생은 40부터라고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환갑의 나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누비며 진지하게 달리는 모습이 20대 같다. 그가 뿜어내는 방망이의 불꽃은 지칠 줄 모르게 타오르고 있다. 2천 게임 째에도 홈런 등 4타수3안타를 때리는 등 타율·홈런·타점에서 모두 1∼2위를 마크하고 있어 후배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2천 게임, 한 팀이 80게임을 치르는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게임도 빠지지 않고 출전해도 25년이 걸리는 게임 수다.
개인의 기록보다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라운드를 뛰는 노장의 모습에 숙연하다. 이 같은 그의 끈기는 19년간 고난과 형극의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낸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경동고·농협을 거쳐 19세의 어린 나이로 지난 63년 도오에이(동영)에 입단, 지난해 긴떼쓰 (근철) 에서의 일본 프로야구생활을 청산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야구인생은 냉대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운동화 끈이 끊어지고 집에서 그릇이 깨어지는 사소한 일에도 그는 불길한 징조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은 홈런을 칠 좋은 징조라고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날이면 꼭 훔런을 날렸다. 불길한 징조를 길조로 승화시킨 그의 강한 삶의 철학 때문이었다. 프로데뷔 13년째인 75년 다이헤이요 (태평양) 시절 타율 3할1푼9리로 퍼시픽 리그의 수위타자가 되기도 했다.
『프로의 세계는 냉엄한 승부의 세계다. 실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것은 뼈를 깎는 혹독한 훈련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그는 프로야구에서 진정한 투혼의 승부사다.
오랜 일본 프로야구생활로 한국의 현실에 제대로 적응치 못해 남모르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눈앞의 승리만 요구하는 구단 측과의 마찰로 몇 번이나 사표를 던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어렵던 일본에서의 시절을 생각하며 참았다.
한국에서 「제2의 야구인생 」을 뛰고있는 그는 『선수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솔선수범해서 선수보다 더 많이 뛰고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후배들에게 프로야구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자극제가 되고자 불혹의 나이에도 그라운드에 서고 있다.
「끈기의 화신」 백인천. 그는『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는 자만이 야구에서나 인생에서나 모두 역전의 홈런을 칠 수 있다』고 말한다.
▲1943 서울 산▲61년 경동 고 졸·농협입단▲62년 일본프로야구 도오에이 (동영)2군 입단▲63년 동 팀의 1군에 승격▲73년 일척▲74년 일본 햄▲75∼76난 태평양▲75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수위타자(타율3할 1푼9리) ▲77∼80년 롯데▲81년 근철▲81.12.14 한국프로야구 MBC청룡 감독취임▲82.6.12 2천 게임 출전

<조이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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