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후보 중심 투표에 대비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4.24 재.보선 이후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정당공천이 허용된 7개 전 지역에서 패배한 노무현 정부는 특검제 수용과 이라크 파병으로 인한 진보 지지층과의 마찰을 패배의 원인으로 보는 듯, 노무현식 새 정치 중 가장 높이 평가받던 초당정치를 상처내며 진보적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승리로 자신감을 회복한 한나라당도 이러한 노무현 정부에 대해 강경 대응함에 따라 두 진영 간의 세(勢) 대결과 색깔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재.보선 결과에서 드러난 유권자들의 새로운 투표현상을 이해하지 못한 두 진영 모두의 악수(惡手)다.

*** 해석 엇갈린 4.24 재보선 결과

정당공천이 허용된 7개 지역의 선거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주장하듯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견제의 결과도, 노무현 정부와 신주류가 생각하듯이 진보 지지층과의 마찰에 의한 결과도 아니다.

재.보선 결과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유권자들의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 약화되는 대신 후보자 개인 중심의 투표행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당이 고양 덕양갑에서는 43%를 획득했지만, 의정부에서는 3%밖에 득표하지 못한 사실은 연합공천의 위력을 감안한다 해도 여전히 후보자 개인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또한 의정부에서의 한나라당 승리는 한나라당의 승리이기보다는 민주당 관계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공천이 더 큰 원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후보자 개인의 효과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자치단체장과 시.도의회의 선거결과를 보면, 정당 중심 투표에서 후보자 중심 투표로의 이동이 더 확연하다. 지역감정으로 일당우위체제가 형성돼 다른 당명으로는 출마를 엄두도 내지 못하던 충남의 공주.아산, 경남의 거제, 전남의 진도에서 모두 서너명의 후보가 20, 30%대의 고른 득표를 보이고 있다.

이는 3金의 퇴장과 함께 아무나 공천해도 지역주의에 기반한 당의 브랜드 가치로 당선되던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후보자 개인 중심의 투표행위는 이번 재.보선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정당지지는 한나라당이 더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며, 미디어 선거의 확대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물론 전통적인 정당 중심의 선거를 해온 유럽에서마저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역별 일당우위체제의 붕괴조짐과 후보자 중심의 선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정당이나 후보 모두에게 낡은 색깔론이나 지역감정 유발 전략이 아닌 새로운 선거전략이 필요하다.

후보자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당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시절이 지났기 때문에, 지구당위원장직을 움켜쥐고 앉아 쉽게 공천을 확보하는 것보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유권자를 접촉하고 자신을 알리는 것이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인데, 이는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바 있다.

또 당 노선의 무조건적인 추종자가 되기보다는 국민 다수의 여론과 맞지 않는 노선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과감히 다른 목소리를 내어 '정당과 국회는 나빠도 우리 후보는 괜찮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당선권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 黨과 다른 목소리도 낼수 있어야

정당의 입장에서는 미디어 선거에 맞는 정치적 스타성을 지닌 후보를 확보하는 것이 당 조직을 건설하고 당원을 확충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전략이 된다.

또 자기당 노선에 대한 비판이나 상대 당과의 정책적 연합을 통해 정치적 마케팅을 하고자 하는 후보들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융통성을 보이는 것이 더 많은 당선자를 내는 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나라당은 당내외적인 색깔논쟁을 통해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개혁신당파는 국제정치경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해양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통해 이념적인 순수성을 인정받고자 한다.

이러한 두 진영의 움직임이 가속화된다면 정당의 브랜드 파워가 약화된 내년 총선에서는 정치개혁과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동시에 표방하는 제3후보가 대거 당선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