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서울 국제 가요제|빛 바랜 가수들…장사 속 놀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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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KBS 제2TV『명 연주와 명곡의 밤』은 클래식음악팬을 위한 유일한 프로다.
외국의 저명한 악단의 연주나 국내외의 이름 있는 지휘자가 소개되기도 하여 좋은 평을 듣기도하지만 형식적인 제작일 때가 있어 아쉽다.
지난달 28일의 경우 외국에서 만든 필름을 방영하면서 자막만으로 악단이나 곡명을 소개하고 말았는데 간단한 해설이 첨가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MBC TV의『82서울국제가요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나.
①과장이 지나친 가요제.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입상자가 결정되는 음악제란 명성 있는 가수에게는 따돌림을 받아 빛 바랜 가수나 장사 속이 밝은 레코드업자의 구미만 돋우는 시시한 행사로 전락된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를테면 미국시장의 인기차트에는 오른 일이 없거나 영국의 멜러디 메이커 같은 차트에도 낀 적조차 없는 가수들을 데려다「전세계적 명성을 지닌 가수」(엠리스리)라거나,「유럽 최고의 인기가수」(해리·찰키티즈)라는 과장된 소개와-.
보컬이 인기를 잃어 몇 해 전 해체된 멤버를 옛날의 명성에 의지해「세계적인 가수」라고 선전하거나(마이티), 해체된 보컬 팀에서 연주하던 멤버를「유럽 최대의 가수」(메이우드)라고 헛소리를 하는 등 마치 세계적인 가수들만 모인 음악제인 것처럼 과장해 왔으니 시청자가 우롱 당한 기분이다.
②상업성이 노출된 가요제.
음악제에서 발표될 노래를 미리 FM을 통해 소개시켰으니(예컨대『사랑의 첫 순간』)레코드판매롤 위한 전략이 음악제롤 무색하게 만든 꼴이 됐다.
게다가 14개국에서 모인 16명의 심사의원은 대개가 레코드제작과 관련된 사람들이니 음악제란 본디 레코드회사나 악보출판사의 선 전장이라는 소리가 옳은 말임을 실감케 하였다.
③허울좋은 명분의 가요제.
「음악을 통한 상호이해와 친선을 목적으로 우정어린 경연을 벌인다」는 게 이 행사의 명분이다.
음악을 통한 진정한 이해는 그 나라 국민의 정서가 녹아 흐른 음악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즈나 디스코, 로크 따위로 일관하였으니 음악제가 내건 구호와 명분은 헛것이 된 느낌이다.
④민속제로 둔갑한 듯한 가요제.
호화롭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펼친「88서울올림픽서시」라는 특별공연은 가요제와는 상관없는 민속놀이로 빈약한 행사를 돋보이려는 속셈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가요제가 우리 민속놀음마당이 된 착각을 빚었다.
⑥오염된 아카데미즘. 이른바「서울올림픽서시」가 지닌 테마는 한군데도 찾아볼 수 없고 수많은 학생들이 펼쳐 보인 여러 민속놀이는 통속적이고 상업성이 본질인 가요제에 학생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수해야 될 아카데미즘이 상업주의에 오염된 빈축거리가 되었다.
⑥낭비가 빛을 낸 가요제. 무명가수나 한물간 가수들이 중심이 된 행사이면서 4천만원 가까운 상금과 출연자수만큼의 초청된 심사위원, 흑백TV를 외면한 현란한 장치는 엄청난 돈이 먹혔다는 증거고 국적불명인 나팔의 팡파르와 영자로 쓰인 피킷이 등장한 것은 체육행사쯤으로 착각시켰으며 서툰 반주(『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경우)와 어 슬픈 영어가 끼여든 것(전야제까지 포함하여)은 허술한 진행의 보기가 된다.
또「쎄쌍」이니「샤랑」이라는 식의 억지로 버터냄새 내는 우리 말 노래가 불려졌다는 것은 3류 가수를 세계적인 가수로 둔갑시킨 것만큼이나 가요제의 참뜻을 잊은 소치다.
신규호<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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