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가 주역으로 사전에 치밀한 계획|장 여인 사건…국회보고서 "주범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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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 사기 사건의 수사 결과 국회보고가 느닷없는 「주범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8일 정치근 법무부장관의 국회보고는 사실상 이 사건의 네 번째 수사 발표 안 셈.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지난 7일, 11일, 20일 등 세번이었다.
이들 부부를 외환 관리법 위반 혐의만으로 구속했다는 지난 7일의 1차 발표는 소위 「국민을 우롱한」처사로, 11일의 두번째 발표는 의혹과 의문으로 범벅이 된 「작품」으로, 20일의 3차 발표는 수사에 진전은 있었으나 중간 발표 때의 의혹 해명에 치중한 「해명서」였다는게 중론.
문제는 초동수사에서 3차 발표에 이르기까지 이·장 부부가 공동정범의 관계로 일관되던 것이 국회 보고부터는 마치 「이철희 단독 범행」으로 착각할 만큼 이씨에 대한 죄질의 튼이 수정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이철희가 주동한 조직적·계획적 사기 사건』이란 표현도 처음 있는 일. 특히 이날보고는 이씨의 난잡했던 여성 편력, 수치스런 전과 실질, 모친상도 외면한 패륜아, 음흉한 2중인격자라는 사실을 적시해 그가 능히 이런 사건을 꾸밀 「주범」이란 예단을 강력히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정 장관은 보고 내용 중 이철희가 「주도적」으로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두 곳에서 강조했다.
또 『세간에서는 탐욕적 성품의 장영자라는 여인이 형부 이규광의 비호 하에 사기를 한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나 (중략) 소년시절부터 절도 사기의 전과가 있는 2중 인격의 이철희가 주동한 조직적, 계획적 사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공영 토건에 대한 사기 범행 과정 설명에서 3차 발표 때는 장이 전남편 김수철을 통해 이 회사 사장 변강우를 소개받고 이철희 전직 신분 등을 은근히 과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회 보고서는 행위 주체가 이철희로 주어를 바꾸는 바람에 『이철희는…전남편 김수철을 통하여』로 돼 김수철씨가 이철희의 전 남편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이밖에 당초의 「이·장 부부의 일확천금 망상」이 「이철희의 망상」으로, 「상호 이해가 얽힌 결혼」이 「장의 배후 영향력과 자금을 얻겠다는 이의 정략 결혼」으로 바뀌는 등 이철희의 「주동적 범죄」라는 판단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놓고 「또 다른 의혹」과 「법률적 견해」가 맞부딪치고 있다.
검찰의 갑작스런 범행 주체 평가에 대해 일반 여론은 장 여인보다 이씨가 더 음흉하고 나쁜 사람임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거나 배후 수사를 종결하기 위한 검찰의 고육지책이라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없는 배후를 계속 밝히라는 국민 여론을 진정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형사 소송법상의 절차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28일 하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장 두사람은 형법상의 공동정범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들 부부는 공동으로 일정한 범죄 (이 사건의 경우 사기)를 실행했다는 공동 실행의 객관적 요건과 이를 위한 의사 연락의 주관적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다만 기소를 앞두고 심판의 대상이 될 공소 사실 중 피의자별 범행 역할을 적시하는 과정에서 이철희의 구체적 행위가 강조되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또 이씨의 성격·사생활 등 범죄 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을 밝힌 것은 그동안의 보강 수사 내용을 낱낱이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배후에 대한 의혹이 말끔히 씻어지지 않았고 사채업자 「큰손」에 대한 수사가 미진한 상태에서 보강 수사가 이철희 주변에 그쳤다는데 의아심을 갖고 있다.
더우기 이들 둘이 법정형에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는 공동 정범이라면 한쪽에 대한 집중적 평가는 자칫 앞으로의 재판에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 법조계에서도 개인별 범행의 역할은 심리가 진행됨에 따라 명확해질 문제로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에서 검찰이 「주범」의 예단을 유도한 것은 그 「의도」룰 두고 오히려 국민 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한된 인력으로 엄청난 규모의 사건을 단시일에 해결하는데는 무리도 있었겠으나 수사 결과가 줄곧 선명치 못했던 것은 사실.
한때의 「방황」에서 고유의 기능을 되찾은 듯한 검찰은 국회에서의 뒤늦은 「주범론」으로 또 한번 눈치 수사란 구설수에 오를 것 같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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