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칼 로브' 버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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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원을 언론에 흘린 것으로 알려진 칼 로브(사진) 미 백악관 부비서실장에겐 '부시의 두뇌(Bush's brain)' 또는 '설계사(the architect)'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두 번의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선거전략 참모로서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누설자(the leaker)'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꼬리표다. 로브는 과연 '리크(정보누설)게이트'(본지 7월 12일자 2면)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바람 앞의 등불이 된 로브의 거취에 워싱턴 정가의 눈이 쏠려 있다.

부시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로브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했다. 백악관에서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기자들이 "로브를 해임할 거냐"고 묻자 부시는 침묵으로 응수했다.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받았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대신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로브의 해임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신임이 없다면 여기서 일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전날까지 그는 입을 다물었었다. 기자들에게 "검찰이 수사 중이어서 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1일 이후 그는 이 말을 무려 23차례나 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그런 그가 로브에 대한 부시의 신임을 재확인하는 듯한 얘기를 하자 워싱턴에선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공화당 전략가인 찰스 블랙은 로브가 살아남을 것으로 봤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민주당이 로브를 맹비난하는 것은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그에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공화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민주당의 마녀사냥으로부터 로브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로브가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하는 백악관 관계자들도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민주당은 공세를 강화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과 대결했던 존 케리 상원의원은 12일 "로브는 마땅히 해임돼야 한다"며 "백악관의 신뢰가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나도 머리를 끄덕인다"며 동조했다.

민주당 중진들까지 로브를 경질하라고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로브가 물러날 경우 부시 대통령의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부시가 망설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일 기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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