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 소집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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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영자 부부의 어음사취사건은 집권당의 당직과 내각개편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그것은 이번 사건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사기를 진작하고 청신한 기풍으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려는 정치적 결단력의 소신이기도 하다.
이제 이 같은 결단력을 바탕으로 이번 사건의 진상이 좀더 자세히 규명되고 수습책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라는 것이 온 국민의 심정이기도 하다.
국회는 지금 이 사건의 뒷마무리를 짓기 위해 여야가 임시국회의 소집을 절충하고 있다. 야당은 이번 사건의 검찰수사 발표가 미진하다고 주장,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기 위한 임시국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국회소집자체보다도 국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잘 매듭짓느냐」가 문제라며 좀더 시간을 두고 검토하려한다.
결국 임시국회에서 이 사건의 수습책을 마련한다는데는 여야의 견해가 일치하나 국정조사권의 발동여부에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당초 여당 쪽에선 국정조사권의 발동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내각과 당직의 개편이라는, 정부로서는 최대한의 성의 있는 정치적 수습책을 제시했고, 아울러 검찰의 수사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점을 들어 국정조사권의 발동을 거부하게 됐다.
다시 말해 여당은 국정조사권의 발동이 국회가 이번 사건을 잘 마무리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여야의 논란을 좀더 거칠 전망이나 지금으로써 중요한 일은 국정조사권 발동여부 때문에 국회 소집시기를 자꾸 늦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야는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일단 국회를 열고 사건의 진상과 사후수습책을 추궁하는 가운데. 필요하면 국정조사권의 발동을 다시 협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정조사권의 발동여부가 임시국회 소집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너무 조속한 국정조사권의 발동이 수사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민정당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감안하여 서로 충분한 타협을 하면서 임시국회를 일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야의 의견이 대립될 때는 일단 합의한 분야부터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정치의 정도다. 임시국회 소집자체엔 여야 모두 찬성하면서 국정조사권 때문에 그 소집을 늦추는 것은 과거와 다름없는「정쟁」의 연장일 뿐이다.
집권당은 이미 어음사취에 압력을 넣지 않았다는 검찰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의심을 받았던 인물을 퇴진시킬 만큼 이번 사건에 임하는 고도의 결단력을 보였다.
정부도 책임 당사자인 부처의 장관을 유임시키면서 뒷수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검찰도 수사의 미진한 부분은 계속 수사할 것임을 공언했다.
이처럼 진상규명과 사후수습이 정치·행정 양면에서 강조되고 있는데도 유독 국회만이 입씨름으로 소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중요한 시기에 국회가 공전하는 과거의 타성은 버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집권 민정당의 성숙한 정치력을 기대한다. 내각과 당직의 새로운 진용이 국회를 통해 이번 사건의 마무리를 이룩하는 것은 자신들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장관이 바뀌었고 왜 실력 층 당직자들이 물러났는지 국민들로선 의아할 따름이다.
아울러 국회도 이런 때일수록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서 민심수습과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할 것이다. 사건의 내용이 엄청나게 큰 만큼 이 사건을 다루는 정치인의 자세도 진지해야 할 것이다.
당리당략을 넘어서서, 이번 사건의 진상에 좀더 접근하려는 국민의 눈과 귀를 의식한다면 의정의 능동적인 역할이 다시 한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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