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중대 제안' 정부 발표] 2조5000억원짜리 북핵 승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가 12일 공개한 대북 중대 제안은 제4차 6자회담을 앞두고 띄운 일종의 '승부수'다.

여기에는 4차 6자회담 재개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실질적 성과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 밑자락에는 북핵 위기가 지속되는 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요원하다는 판단과, 좀체 풀리지 않는 북핵 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조바심도 깔려 있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직접 송전 방식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안전보장과 에너지 문제인 만큼 우리 정부가 이 중 하나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사표시다. 이를 통해 북핵 문제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 때 200만㎾에 해당하는 에너지 지원을 제1의 요구사항으로 내놨다. 200만㎾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미국이 건설해 주기로 합의한 경수로가 매년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그런데 정부가 딱 그만큼의 전력을 직접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충분히 북한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사실상 정부는 미국이 꺼리는 경수로 사업을 종료한 셈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비용도 당초 경수로 건설에서 우리 정부가 부담키로 했던 35억 달러 중 아직 집행되지 않은 24억 달러를 대신 갖다 쓰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추가 비용 부담이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공사 개시 시점도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다고 합의문에 명시하는 것과 동시에 송전로 및 변환설비 건설 공사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2008년부터는 실제 송전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대신 정부는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했다. '돈으로 갚으라는 얘기는 안 할 테니,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압박이다. 6자 회담 참가국들에도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이만큼 할 테니, 진정 북핵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면 참가국들도 나름의 성의를 보이라는 요구다.

이날 공개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북한이 4차 회담 복귀를 발표한 지금이 공개의 최적기라고 판단했다. 물론 회담을 2주일여 앞두고 우리가 먼저 '기초답안'을 내놓음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국내 정치권과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한 관계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 앞에 야당도 쉽사리 반대 의견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많다. 당장 200만㎾를 생산할 발전소를 짓고, 북한 내 송전 및 변환설비를 건설하는 비용만 해도 24억 달러(약 2조5000억원)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6자회담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즉각 "헛돈만 쓴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미 간 대립이 심화될 경우 그 틈새에서 중대 제안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신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