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집단행동…사장 단장 사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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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뿔났다. 구단 선수 사찰과 내부 갈등에 대한 사과와 함께 혁신을 요구했다. 최하진(54)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와 배재후(54) 단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난 5일 밤. 부산 사직구장에는 남녀노소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프로야구 롯데 팬들이라고 밝힌 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집회를 열었다. 이어 "선수 사찰을 일으킨 최하진 대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구단 내 파벌을 만들어낸 프런트도 자이언츠 팬들에게 사과하라"는 성명을 밝혔다. 지난 2일에는 '롯데자이언츠클럽' 회원들이 사직구장 앞에서 삭발식을 열었다. 서울에서도 10여명이 '자이언츠를 살려달라'(Save the Giants)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제2롯데월드 앞 사거리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최 대표는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롯데 관계자는 "구단에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물러날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배재후 단장 역시 5일 오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배 단장은 "시시비비를 떠나 사태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롯데 팬들의 성난 민심이 '오프라인'에서 표출되기 시작한 건 선수단 사찰의 배후에 최하진 대표가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롯데 선수들은 최 대표와의 면담에서 "원정 숙소 호텔 CCTV를 통해 선수들을 감시하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최 대표는 답변을 회피했고, 권두조 전 수석코치와 이문한 운영부장이 책임을 물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최근 최 대표가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최 대표는 "사전에 선수단에 CCTV 확인을 공지했다"고 밝혔지만 선수단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감독 선임을 두고 선수단과 프런트의 대립이 벌어진 데 이어 사찰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롯데 팬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롯데 팬들은 한국에서 가장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 사직구장으로 가는 팬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08년 137만 명을 시작으로 5년 연속 100만 관중 동원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77만 명, 올해 83만 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구단 수뇌부가 연이어 물러났지만 여전히 팬들은 롯데를 향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팬들의 시위와 인터넷 동영상으로 구단을 압박해 김성근(72) 감독을 영입한 한화처럼 제2의 프로야구 소비자 운동으로 확대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구단은 팬을 생각하는 운영을 해야한다. 하지만 팬이 구단 운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현재 사태는 분명 구단에 책임이 있다. 팬들이 야구단에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냈지만 구단이 선수단을 무시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구단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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