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속은 숯검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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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장신구 생산업체인 Q사는 최근 유럽연합(EU)지역 바이어와 5만 유로어치의 니켈 도금 반지 수출 계약을 했다가 낭패를 볼 뻔했다. 선적 단계에서 바이어가 니켈 함유량이 EU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랴부랴 선적을 취소하고 EU안의 융통성 있는 바이어를 찾아 겨우 수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내년 7월 EU에서 특정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이 발효되면 이같은 국내 수출기업의 '장벽'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 EU를 필두로 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환경규제가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EU는 완제품뿐만 아니라 제품을 구성하는 소재.부품에도 환경규제를 엄격히 적용하고 폐기과정도 꼼꼼히 살핀다.

이런 규제로 우리나라의 대(對)EU 수출품의 약 70%인 150억 달러 이상이 환경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미국의 컴퓨터.휴대전화 재활용법, 일본의 자원유효이용촉진법 등이 시행되면 해당 제품의 수거와 재활용을 제조업자가 책임지게 돼 있어 우리 기업의 비용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EU의 환경 법안을 본떠 여러 환경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2007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폐가전 회수처리규칙'을 준비중이다. 이 규칙이 발효되면 컴퓨터.TV.냉장고 수출에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환경 규제를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2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전자업체인 A사가 3000여 협력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0여업체가 납.카드뮴 제한 등 EU환경규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업체 B사도 최근 300여 협력업체에 환경기준에 맞게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했다. 일본 소니는 자사 환경 인증을 취득하지 못한 20%의 협력회사를 최근 정리했고, NEC는 40%를 정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환경규제에 대응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의는 '대-중소기업 환경협력지원센터(가칭)' 을 세워 업종별로 표준화된 관리 프로세스 등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줄 것을 건의했다. 엄성필 코트라 통상전략팀장은 "다자협상 및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을 통해 관세율은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환경 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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