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다니엘 린데만의 비정상의 눈

한국에 사는 행복 … 그래, 가끔은 산을 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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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다니엘 린데만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한국에 살면 얻을 수 있는 행복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산을 꼽고 싶다. 특히 서울에선 어디에 살든 웬만하면 30분 안에 산에 올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이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세계에 이런 도시가 드물다고 들었다. 가을이면 산으로 단풍놀이를 떠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 아닐까.

 산은 한국이 가진 소중한 자연 자원이다. 독일에서 높은 산은 알프스 산맥이 있는 남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나는 평야가 대부분인 서부 출신이라 정작 모국에선 높은 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한국에 온 뒤로 한국인과 외국인 친구들이 어울려 함께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산은 한국 생활의 묘미다.

 산을 타는 사람끼리는 평소 나누지 못한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침묵도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산을 함께 타면 평상시에 나누지 못하는 침묵도 여럿이 함께 나누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산을 내려올 때 쯤이면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는 독특한 친밀감이 생긴다.

 사실 산에 갈 때는 굳이 대화가 없어도 상관없다. 며칠 전 산에 오르며 혼자서 생각에 잠길 때 가장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산을 타면서 ‘목적과 꿈이 있어야 인생을 알차게 살게 된다’와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놓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전에는 ‘젊을 때 고생해야 나이 들었을 때 편하게 살 수 있다’와 ‘언제 인생이 끝날지 모르니까 젊을 때부터 하루하루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산을 타는 내내 고민한 적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에 빠진 채 한참 동안 산을 돌아다니고 나면 알 수 없는 희열이 찾아온다. 꼭 답을 찾으러 산에 갈 필요는 없겠지만 자주 산에 다니면 답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답을 얻지 못해도 괜찮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산길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그야말로 서울에 사는 행복이다.

 독일 남부 사람들은 성격이 밝고 독일인 중 웃음이 가장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난 산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남부에 있는 뮌헨대가 아마 이런 이유로 인해 독일 대학 중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건 아닐까?

다니엘 린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