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1)제77화 사각의 혈전 60년-김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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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해남의 등장>
서정권이 사라지자 또 하나의 코리언 주먹이 등장했다. 최소한 알몸만으로의 실력 대결에선 대세를 일본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민족적 의지의 징표였다면 비약일까.
어쨌든 공교롭게도 서정권이 일본의 복싱영웅 굴구항남에게 떼밀리 듯 쓸쓸하게 퇴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해남이 나타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현해남도 서정권과 같은 밴텀급이었다. 이 두 선수는 같은 체급에 한국의 남부지방 출신이며 또 극동의 최강자였다는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복싱스타일은 퍽 달라 흥미로운 대조를 이뤘다.
서정권은「악돌이」란 별명이 붙을만한 저돌적인 파이터인 반면, 현해남은 다채로운 테크닉을 구사하는 클레버 복서였다.
그런데 서정권은 만석꾼의 아들로 부유하게 자랐고 현해남은 찢어질 듯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니 일반적인 통념과는 엇갈리는 이채로운 현상의 주인공들이다.
현해남은 서정권보다 5년 늦은 1918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현방담이며 복싱 선수로 데뷔하면서 해남이라는 링네임을 붙였다. 『현해탄을 건너온 사나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었다.
현해남은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소년시절부터 제방공사장 등에서 고된 막노동을 했고 『말랑말랑한 현미 빵 사려!』하고 외치며 다니는 행상을 하기도 했다.
그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만17세이던 35년초 동경의 겨울밤거리를 배회하던 빵 장수 현해남은 우연히『가』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복싱을 테마로 한 영화로 스크린과 링의 대 스타 적야정행이 특별출연하고 있었다.
적야는「일본 복싱의 어머니」로 불리는 유명인으로「일본 복싱의 아버지」인 도변용차낭과 쌍 벽를 이루는 선구자다.
서정권의 스승 도변이 일본 권투 구락부를 창립, 초기에 아마추어 복싱에만 전념할 때 적야는 제국 권투협회를 설립, 곧바로 프로복싱의 보급과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그에 앞서 적야는 입교대 상과 재학 중 무역상인 부호의 아버지 덕으로 미국 유학을 했으며 이때 복싱에 심취, 귀국 후 일본 초대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이 되었다.
외모가 준수한 적야는 현역 은퇴 후 근위대 복무시절에 사권 친구인 영화감독 소진안이랑과 손을 잡고 복싱 영화의 제작에 착수했다.
그리고 적야가 주인공역을 맡았다. 이 일본 영화 사상 최초의 복싱영화가『철완』이며 공전의 히트를 치자 소진·적야 콤비는 계속해『링의 왕자』『대학의 호』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연유로 돈이 많은 적야의 제권이 멀지 않아 도변의 일구를 누르는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고 도변이 서정권을 데리고 미국에 가있는 동안 제권은 일본 프로 복싱계를 거의 석권하다시피 했다.
요즈음의 쿵푸 영화같이 청소년들의 인기를 끌던 복싱영화의 하나인『가』를 본 현해남은 그 영화속에서 주인공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후 두 주먹만으로 입신출세한다는 스토리에 감명을 받고 스스로 복싱 입문을 결행했다.
그리고 물론, 찾아간 곳이 적야의 제거이었다.
현해남은 단순히 복싱선수가 되겠다는 생각뿐만 아니라「제2의 적야」를 꿈꿨다.
현해남 자신도 막노동을 하며 거칠게 자란 불우 소년답지 않게 얼굴이 고운 미소년이었다. 적당한 키에 몸매가 호리호리하며 오목한 코에 갸름한 얼굴 등 어느 모로 봐도 대 스타 적야보다 못할게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복싱만 배워 챔피언이 된다면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복싱배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적야 사범의 지도로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현해남은 가히 천재적인 재질을 발휘했다.
10살이 넘자마자 제몸통 만한 바위 덩어리를 나르는 사방공사에서 땀을 홀렸고 밤이 되면 매일 수십릿 길을 헤매는 행상을 했으니 강인한 체력은 이미 저절로 길러놓은 셈이었다.
현해남은 머리가 영특했고 몸이 빠르고 유연했다. 신장에 비해 리치가 긴 것도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복싱 입문 약 반년만인 35년11월 제2회 전 일본 복싱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현해남의 데뷔무대였다.
약 보름간 계속된 예선에서 현해남은 승승장구, 놀라운 신인탄생의 선풍을 일으켰다. 첫 경기에서 장남명남을 3회 KO로 물리치더니 증촌설일·목야맹·야기진홍, 그리고 관재 등 일본의 중견 선수들을 파죽지세로 연파, 대망의 절승에 진출한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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