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참사 다룬 국회내무위|14시간의 마라톤회의「신뢰회복」건의에 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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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령사건을 다룬 국회내무위는 사건의 참혹성, 임시국회소집의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는 야당 측의 공세, 그리고 신임 노태우 내무장관이 지닌 「정치적 무게」등 여러 요인이 겹쳐 시종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 가운데 진행됐다.
노 장관이 먼저 『입이 백 개라도 할말이 없다』면서 『의원들의 질문을 애국심에 입각한 국민들의 소망으로 받아들이겠으나 취임한지 하루밖에 안 돼 하나하나 답변 드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인사했고, 안응모 치안본부장을 비롯, 출석한 치안관계자들도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는 자세였다. 노 장관은 사실에 대한 답변보다는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주로 많이 피력.
노 장관은 마지막 답변에서 수경사령관 재직 시를 회고하면서 『각계의 지도적 인사를 만나 책임감과 소신을 갖고 일해 주십 사고 군인다운 소원을 얘기했었다』면서『이제 나는 내무장관으로 여러분의 꾸중을 받고 있으나 모든 채찍질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야당의원들도 발언에 매우 신중해 써 온 원고를 낭독하는 식이었고 호칭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장관님께서 성찰해 달라』(유준상 의원·민한)는 식. 조병규 의원(국민)같은 이는 『역대장관 누구보다 훨씬 대통령의 신임이 깊을 것이니 활약을 기대한다』고 했는데 노 장관은 『나에게 대해 지나치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겸양.
노 장관은 또 최고통치자의 담화문발표를 진언할 용의가 없느냐(박관용 의원·민한)는 질문에 『대통령께서도 사건을 보고, 경악해 3일간 잠을 못 잤다』고 전하면서『기회 있으면 여러분들의 뜻을 전하겠다』고 약속.
사실상 상임위답변이 처음인 노 장관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고 낮은 목소리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노 장관의 답변에 대해서는 말꼬리를 잡고 걸고넘어지는 식의 보충질의는 거의 없었다.
다만 민한당의 조종재 의원이『이승복 군이 「공산당이 싫어요」하고 죽었다면 의령의 피살자들은 무슨 비명을 질렀겠느냐』『우 순경이 총을 쏘았을 때 본부장이 현장에 있었다면 폭사했겠느냐, 도망쳤겠느냐』『파리의 위력이 경찰보다 위냐 아래냐』는 등 엉뚱한 질문을 해 폭소.
○…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은 △경찰의 기강 △치안태세의 허점 △총기관리문제 △경찰인사행정문제에 집중됐는데 민정당 의원들이 실무적인 해결책을 물은 데 비해 야당의원들은 내무부차원을 벗어난 정치적 문제로 연결 지었다.
민정당 의원들은『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 않았느냐』『지서장이 밤10시40분에 돌아왔다는데 사실이냐』『면장은 무엇을 했느냐』는 등 사고상황에 치중.
민한당 측은 방위 병 문제·예비군 동원체제·안보상의 허점 등을 지적함으로써 이 사건이 내무장관 선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이성일 의원(국민)은『정부의 정책의지에 대한 국민들의 폭넓은 공감대형성이 미흡한 것』이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이용택 의원(의정)은 『정부가 준 전시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솔선수범하지 못하고 국민을 기만한 도덕적 책임』을, 유애상 의원(민한)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
사건과 관련해 언론의 보도가 늦어진데 대해 김진재(민정) 이성일(국민)의원 등은『안보문제일수록 신속한 보도가 중요하다』『현재의 보도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신랄하게 지적.
결국 이날 내무위는 밤 11시50분까지 장장 14시간 가까이 회의를 했으나 여야의 속셈이 엇갈리고 취임 하루밖에 안된 노 장관을 몰아붙일 분위기도 아니어서 경찰신뢰회복·인력보강 등 지극히 상식적인 8개항의 건의로 마무리지었다.
야당의 임시국회소집 요구라는 정치공세가 배경에 있었기 때문에 관계장관출석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의 입장이 오히려 뒤바뀌어 민정당 출석제의를 민한당이 거부. 민한당 측의 노력으로 민한·국민·의정동우회간에 임시국회소집을 위한 연합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보이자 민정당 측은 이종찬 총무와 김종호 내무위원장의 숙의 끝에 예방 선을 치기 시작했다.
의원들의 질의가 한참 계속중인데 민정당 간사인 양창식 의원이 돌연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민한당 측에서 마치 민정당이 국방이나 보사 등 관계장관의 내무위 자진출석을 거부하는 것같이 말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발언.
양 의원은『국민당과 의정동우회 측에서 관계장관 자진출석을 요구했으니 잠시 정회하고 간사들끼리 협의하자』고 자제.
소관부처 이외의 장관을 상임위에 출석시키는 것은 전례가 된다고 지금까지 극 력 거부해 온 민정당 측의 이 갑작스런 제의에 야당 측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 그러다가 박관용 의원(민한)이 의사진행발언을 얻어『야당이 단합해 국회소집요구서를 제출하려고 하니 김빼기 작전으로 나오는 게 아니냐』고 일축.
당초국방·법무·보사·문공 장관 출석요구는 29일 간사회의에서 민한당 측 유준상 의원이 주장했고 국민당과 의정동우회가 동조했던 것인데 민정당이 이를 역이용하려 했다가 민한당 측이 출석요구를 거둬 버려 기습작전은 허탕을 쳤다.
김 내무위원장은 임종기 민한당 총무와 다시 이문제롤 협의했으나 임 총무도 거절했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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