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밀가루 반죽 갖고 노는 아동극 만들어 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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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6개월 된 어린 아이도 빠져드는 걸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습니다. 어떤 공연이냐고요? 밀가루가 물을 만나 반죽이 되는 과정에 이야기를 녹여 넣은 작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체극'이라는 낯선 연극 장르의 개척자로 꼽히는 이영란(39)씨. 그가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을 대폭 단장해 꾸민 무대에서 물체극 '가루야 가루야'를 9일부터 선보인다. '가루야…'는 24개월 이상 된 아이부터 초등학생까지를 겨냥한 작품. 1990년대 중반부터 물체극을 만들어온 이씨가 흙을 소재로 한 2003년의 '바투 바투' 이후 아이들을 위해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아이들은 공연장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대나무 숲을 지나야 무대에 도착한다. 무대 한 가운데에는 지름 4m, 높이 1m가 넘는 커다란 호밀빵이 놓여 있다. 반으로 뚝 잘린 호밀빵의 가운데 크림 부분에서 주인공 '가루'가 튀어 나와 밀가루에 물을 붓고 치대 반죽을 만든 후 내키는 대로 주물럭거리며 밀가루의 다양한 특성을 보여준다. 공연 시간은 25분, 나머지 40분은 실습 체험이다.

이씨는 "밀가루를 본래 용도에서 분리해 놀이 대상으로 바라보면 상상할 수 없었던 성질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바투 바투'는 10만 어린이 관객을 불러 모았다. 찰흙 반죽하기, 흙물 그림 그리기 등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흙장난'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도 학교 수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이씨의 장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성신여대 조각과 84학번인 이씨는 1990년 작품 제작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소극장을 빌려 흙으로 작품 만드는 장면을 '공연'했다. 마침 실험적이고 비주얼 강한 작품을 만드는 프랑스 연출가 필립 장티를 알게 됐고, 91년 파리로 건너가 그의 워크숍에 참가했다. 미술가.음악가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워크숍은 이씨가 새로운 상상력에 눈뜨게 된 계기였다. 이씨는 프랑스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94년부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98년 연극 '레이디 맥베스' 공연에서는 두 달간 전문가들로부터 얼음 조각을 배워 무대 위에서 실연하기도 했다. 이씨는 "밀가루 가지고 논 것만 10년이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놀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02-569-0696.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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