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깜짝 이벤트']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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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선물'#1 --- 유정이네

1년에 두세차례 정도 아빠 사무실에 놀러가는 진유정 (10.경기도 미금초등5).유민(4) 자매. 지난달 27일 일요일에 엄마 김민희(38)씨와 함께 아빠 (진창수.41.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사무실로 찾아갔다.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세종연구소가 아빠의 직장이다. 진씨는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9평 정도의 연구실을 혼자 쓰고 있다.

이날 아침에 자매는 집에서 쓰는 청소용품들을 아빠 차 트렁크에 실었다. 먼지털이.걸레 밀대.유리창 세정제…. 이날 자매가 수행한 청소 작전의 이름은 '아빠 감동시키기'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앞치마도 둘렀다. "제법이네"하는 아빠 말에 우쭐해 하면서 유정이는 걸레 밀대를, 유민이는 먼지털이를 집어든다.

'게으른' 아빠가 미처 내다버리지 못한 신문과 폐지를 한 데 모아 사무실 밖으로 내간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을 아빠의 안내에 따라 가지런히 책꽂이에 정리한다.

"요즘 아이들은 받는 것에만 익숙하잖아요. 이렇게 사무실을 청소하면 아이들도 '아빠를 위해 뭔가 해줬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는 것 같아요."

김민희씨의 '자녀 자랑'이다. 김씨는 "지켜볼 테니 한번 잘해봐"하며 웃기만 하다 종국에는 청소를 도맡다시피했다.

하지만 청소는 기본.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이날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 하나, 아빠 책상 위에 화분을 올린다. 유정.유민이가 용돈을 아껴 화분을 두개 장만했다. 앙증맞게 꽃이 피어 있는, 어른 주먹 크기의 화분이다. '어버이날 선물'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직접 만들어 꽂았다.

'아빠, 사랑해요. 진유정' '아빠, 사랑해요. 진유민'.

제각기 고른 화분에 하나씩 표지판을 꽂았다. '화분을 본 직장 동료들이 모두 부러워할 것이며, 그 때마다 아빠는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는 게 자매의 속내다.

선물 둘, 상품권.

아빠.엄마를 위한 상품권도 마련했다. 색종이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라 언니와 동생이 각각 하나씩 만든 '효도 상품권'이다.

유정이는 상품권에 '안마 해드리기, 심부름 해드리기, 신발 정리하기'라고 적었다. 상품권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 목록인 셈이다. 유정이는 '4월 28일부터 5월 9일까지'라고 유효 기간도 적어놓았다.

동생 유민이의 상품권에는 '효도 상품권'이라는 제목과 '유효 기간:~'만 적혀있다.

"유민아, 네 상품권으로는 뭘 받을 수 있어?"

아빠가 자꾸 묻지만 유민이는 대답을 못하고 웃기만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유민이는 아직 글을 쓸 줄 몰라 언니 글을 베낀 것이다. 서투르다 보니 어려운 글자가 빠졌다는 걸 아빠는 알고 있다.

"이걸로 뽀뽀도 되지?"

진씨의 요청에 유민이는 곧바로 아빠의 볼에 입술을 갖다댄다.

"점심 먹으러 가자." "뭐 사줄거야?"

작전을 마친 자매가 아빠.엄마를 조르기 시작한다. 이날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나 보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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