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사 정면충돌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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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KBS 노사가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다. 진종철 KBS노조위원장은 최근의 KBS 위기에 대해 경영진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며 5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기로 했다. 노조는 4일 오후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향후 투쟁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런 내부 갈등에 프로그램들까지 맥을 못 추고 있어 KBS호는 이래저래 흔들리고 있다.

KBS가 위기라는 점에 대해선 노사 간 이견이 없다. 문제는 해법이다. KBS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638억원의 적자를 봤으며, 올해도 70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반면 MBC(서울)와 SBS는 지난해 각각 656억원과 359억원의 흑자를 냈다.

이에 대해 정연주 KBS 사장은 지난달 1일 임금 삭감, 수신료 인상, 간접.중간광고 허용 추진 등을 골자로 한 '경영혁신안'을 내놓았다. 경영진도 "20% 임금 삭감을 포함한 어떤 조치도 감내하겠다"며 "무조건 자리를 떠나기보다 개혁을 완수하는 게 책임지는 자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토론회도 제안했다. 그러나 노조의 반응은 싸늘했다. "경영진 사퇴 후 고통을 분담하겠다"며 지난달 15일 결의문을 사측에 전달했다. 토론회도 거부했다.

지난달 30일 정연주 사장과 진종철 노조위원장이 어렵게 만났으나 합의엔 실패했다. KBS 노보에 따르면 진 위원장은 "경영진 사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으나 정 사장은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위원장이 양보해 달라"고 답변했다 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대결구도는 가파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양측 사이엔 구원(舊怨)도 있다. 올해 3월 사측이 노조회의를 불법 녹음한 사실이 드러나자 노조는 정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다. KBS PD협회 등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봉합됐지만 상처가 치유된 건 아니다. 물론 이번에도 변수는 있다. 이강현 PD협회장 등이 4일 "사태의 파국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단식투쟁이 시작될 경우 철회 명분을 찾기는 그만큼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최근 프로그램까지 힘을 못 써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게 KBS로선 악재다. 올 초까지만 해도 '풀하우스''쾌걸춘향''미안하다 사랑한다''해신''부모님 전상서''애정의 조건' 등 내놓는 드라마마다 히트를 쳤다. 그러나 지금은 '불멸의 이순신'을 빼놓고는 자신있게 내놓을 작품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잘나가는' 옆집을 보는 심정도 유쾌할 리 없다. MBC는 최근 최문순 사장 취임 이후 조직을 재정비하고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 성공했다. 노사 간 임금 6% 삭감에도 동의했다. 프로그램들도 순항 중이다. 뉴스에 영향을 미친다는 일일극 '굳세어라 금순아'는 KBS 쪽을 더블 스코어로 앞서고 있고, 수.목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도 신드롬을 낳고 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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