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문화 선진국 실마리, 공예산업으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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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최정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

국가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로 공예를 손꼽을 수 있다. 문화 선진국일수록 공예의 가치를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과 육성이 활발하다. 이탈리아는 공예 활성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네트워크 구축에 앞장서고 있으며, 일본은 전통 공예를 보존하기 위해 공예품 센터 설립부터 연구소와 훈련학교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선진국일수록 대표적 생활 문화인 공예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예는 어디쯤 와 있을까. 2013년 발표된 ‘공예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공예 종사자는 2명 이하의 직원을 둔 사업자가 70%를 차지한다. 개인 사업체가 90% 이상이다 보니, 대부분의 공예가는 자신의 개인 공방에서 소규모로 작업하는 셈이다. 점조직처럼 퍼져 있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네트워크 형성도 쉽지 않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보니 서로가 고립된 상태로 열악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유통과 판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 공정은 대량 생산이 쉽지 않다. 최근 들어 제작의 단계를 단순화하고 있지만, 모든 공예품들이 공예가의 구슬땀이 근간이 되다 보니 유통에 한계가 있다. 또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노력의 결실을 맺더라도 정작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은 개인이 갖고 있는 공방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공방이 곧 제작과 판매의 공간이자 유일한 인프라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도 한국 공예의 수준은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최고 수준의 공예 컬렉터 시장에서부터 생활 디자인의 정점이라 불리는 프랑스 ‘메종&오브제’ 같은 해외 박람회까지, 한국 공예는 유명 박물관의 소장 구입 및 갤러리 입점 등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높은 잠재력을 가진 한국 공예를 더욱 발전시켜 문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공예 산업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공예 산업의 활성화는 곧 우리네 삶의 가치 향상과 경제 성장의 전환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공예시장의 규모는 110조 원에 달하지만 국내 공예 매출액은 9000억원 정도에 그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만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어깨가 무겁다. 공예·디자인 종사자들을 지원하고 산업 진흥을 도맡고 있는 진흥원은 한국 공예·디자인을 대표한다. 최근에는 산업의 본격적인 도약을 위해 비전 나눔식을 개최하고, 공예·디자인 종사자를 비롯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금도 수만 명의 공예가들이 개인 공방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새로운 공예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공예가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 외에도 공예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 때, 한국 공예로 대한민국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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