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복자마을서 출생, 71년 신부서품…농민회 원주연합회 지도신부 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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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교회와 학생을 생각해 달라』며 서울로 연행된 최기식 신부(42)-.
수사관과 함께 성역을 떠날 때 어설픈 웃음을 짓던 최 신부는 한말 천주교박해의 와중에서 수난을 겪으면서 산골로 피신했던 복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천주교사상 둘째로 오래된 풍수원 성당이 있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풍수원마을.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을 따라 성당에 다녔고 중·고교를 서울가톨릭대학부설 성신학교에서 거치는 동안 예비사제의 길을 걸었다. 69년 가톨릭대학을 졸업, 71년 원주교구청으로부터 신부서품을 받고 목회를 시작했다.
원주 원동성당 보조신부를 시발로 단양성당·학성동성당·원동성당 주임신부를 거친 최 신부는 79년3월 현 직책인 원주교구청 사목국장 겸 교육원장을 맡았다.
사목국장은 교구 안 30여명의 한국인 신부들이 번갈아 가며 맡는 직책으로 교육원장을 겸임토록 돼있다.
관리국과 함께 교구청의 2대기구인 사목국은 교구 안의 교육프로그램과 책자발간, 산하단체 활동을 관장한다.
이 때문에 최 신부가 지도를 맡았던 단체가 가톨릭 농민회 원주교구연합회.
지난해 11월 강원도 횡성성당에서 교구 안 가톨릭 농민회원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지세인하와 농협운영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육원에서의 교육과정에 최 신부가 주로 담당했던 분야는 「쿠르실요」라고 불리는 지도자교육.
교육과정 중 기타의 각종 심신피정·성서세미나·공동체묵상회 등은 피 교육생이 소속된 성당신부나 단체의 지도신부가 관장하도록 돼있다. 지도자교육은 1년에 3∼4회에 걸쳐 3박4일 동안 열린다.
최 신부는 교육원안의 자체 예배실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때문에 피 교육생 이외의 일반신도들과는 별로 접촉이 없었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얼굴에 상처를 입고 흉터를 갖기도 한 최 신부는 원주시내에 80세가 넘은 노부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주=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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