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2)<제 76화>화맥인맥(98)위인 초상화|월전 장성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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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한국의 위인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우리 역사상 훌륭한 분들이어서 긍지를 느끼고 있다.
내가 우리조상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걸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만큼 영정제작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돌아가신 분들이어서 고증이 힘들었다. 윤봉길 의사를 제외하고는 사진이 있는 분은 하나도 없다. 옛사람이 그린 초상화가 있는 인물들도 손꼽을 정도로 적은 수여서 일일이 고증위원회를 만들어 위원들에게 자문을 받아야 했다.
내가 그린 위인영정을 연대순으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1953년 제작·아산 현충사소장), 권 율 장군(1970년 제작·행주산성), 다산 정약용 선생(1974년 제작·한국은행소장), 강감찬 장군(1974년 제작·낙성대소장), 김유신 장군(1976년 제작·진천 길상사), 김유신 장군(1977년 제작·경주 통일전), 윤봉길 의사(1978년 제작·예산 충의사소장), 포은 정몽주 선생(1981년 제작·한국은행소장) 영정 등이다.
53년 이 충무공 영정제작을 스타트로 김유신 장군 영정은 두 점이나 그렸다.
76년에 그린 진천 길상사의 김유신 장군 영정은 충북도가 의뢰해서 그린 것이다.
진천은 김유신 장군의 출생지다.
여기에 김 장군의 사당인 길상사가 있다. 영정은 사당 흥무전에 봉안돼 있다. 흥무전의 현판은 일중(김충현)이 썼다.
경주 남산 통일전에 봉안된 김유신 장군 영정은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의 위촉으로 78년에 그렸다.
통일전에는 김유신 장군 영정 말고, 운보(김기창)가 그린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김춘추)과 30대 문무왕 영정도 봉안돼 있다.
위인 초상화를 그리는데는 주로 이병도·이선근·신석호·최순우·최영욱·진홍섭·황원구씨 등의 고증을 받았다.
윤봉길 의사 초상화를 그릴 때는 기념사업회에서도 몇 차례 청탁했지만 특히 윤 의사의 계씨인 윤남의씨가 내게 찾아와 부탁하고 윤 의사 실물사진도 제시해서 다른 초상화보다는 좀 수월했다.
초상화를 거의 완성해놓고 윤남의씨를 초청해 『초상화가 형님과 똑같으냐』고 물어봤다.
봉안식은 78년 봄 예산 윤 의사 기념관에서 김성진 문공부장관·최영희 고증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 마침 오는 25일은 윤봉길 의사 의거 50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더욱 뜻이 깊다.
그날 기념사업회에서는 점심준비를 덕산 온천에 해놓고 손님들을 맞았다.
점심을 먹고 나는 수덕사까지 가보았다. 수덕사 원로스님이 아주 오래된 거문고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도 구경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나이든 거문고였지만 고려 때 것이란 명이 있어 더욱 좋아 보였다.
절에서는 귀한 손님들이 왔다고 약과·다식 등을 내놓고 특별 차도 달여내 후히 대접했다.
내려오는 길에 어떤 사람이 일섭 스님이 기거하던 환희대에도 들르자고 해서 그 방에 들어갔다 붙잡혀 배가 부른데도 다과를 들고 나왔다.
일섭 스님 사건을 대하니 문득 후배인 일당(김태신·재일 화가)생각이 났다.
일당은 일섭 스님의 아들이어서 그전에도 일본서 생활하다 한국에 나오면 꼭 수덕사에 내려가 일섭 스님을 만나곤 했다.
진천 길양사에 김유신 장군 초상화를 그린 76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10월 문화의 달에 대통령을 대리해서 최규하 국무총리가 문화발전에 공이 많은 일곱 사람에게 훈장을 주었다.
나와 함께 문화훈장을 받은 사람은 언론인 홍종인(문화훈장금관), 작가 김정한(은관), 서울대부설 동양음악연구소장 장수훈(보관), 여류수필가 전숙희(보관), 연출가 이진순(보관), 시나리오작가 유한철(보관)씨 등이다.
나는 미술부문에서 문화훈장 은관을 받았다. 74년 낙성대 강감찬 장군 영정 봉안식은 동상 제막식과 같이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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