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정정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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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테말라 군사쿠데타는 이웃 엘살바도르사태로 깊은 혼란의 늪에 빠져있는 중미정세를 한층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우익청년 장교들이라는 점에서 일단 좌경화의 위험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것이 좌익게릴라들의 공세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우익진영의 「적전내분」이기 때문에 좌익게릴라들에게 주는 반사효과는 적지 않은 것이다.
인구 7백만의 과테말라에는 지금 5천명정도의 좌익게릴라가 쿠바, 니카라과의 지원을 받으면서 1만7천명의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6백55달러, 극심한 빈부차, 54년이후 계속된 사실상의 군사독재, 부패의 만연, 인권탄압, 심각한 경제난등 이 나라가 안고있는 문제들은 좌익게릴라들에게 적절한 활동무대를 제공해 왔다.
그래도 엘살바도르가 좌익게릴라의 공세로 흔들리고 니카라과에 좌경정권이 들어서는 사태속에서도 과테말라가 친미적인 우익노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지원과 보수진영의 공존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 공존체제가 지난 7일의 대통령선거결과에 대한 부정시비로 무너지고 만것이 쿠데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미사태 전체를 놓고 볼때 이지역 안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레이건」행정부가 아직도 엘살바도르 위기에 대한 명확한 대처방안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고. 니카라과를 포함한 중남미지역 좌익세력들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 우방인 멕시코, 프랑스등과 의견대립을 빚고있는 가운데 과테말라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 한층 불행한 일이다.
멕시코의 「포르티요」대통령은 중미사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미국이 쿠바, 니카라과등과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미-쿠바접촉을 위한 외교행각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서구우방으로서 중남미 정책을 앞장서서 비판하는 프랑스의「미테랑」 정부는 멕시코의 방안을 지지하면서 미국의 엘살바도르 개입이나 미-소교섭을 통한 사태수습에 정면으로 반대를 하고있다.
중남미사태가 불안한 것은 사회·경제적인 병폐가 누적된 결과로 단시일에 해결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테말라의 쿠데타가 「레이건」행정부를 자극하여 엘살바도르 개입을 서두르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당장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지역 안정의 전망을 더욱 흐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기서 미국은 심각한 딜레머에 빠져있다. 미국안에서도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엘살바도르 개입을 계속 촉구하고 있지만「레이건」대통령으로서는 서방동맹, 우방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뿐만 아니라 개입자체로서도 엘살바도르, 더 크게는 중미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그 역효과는 비극적인 것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써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길은 한편으로는 소련, 쿠바, 니카라과에 의한 좌익게릴라지원을 적극 견제하면서 이지역의 우익·보수지도층으로 하여금 과감한 사회·경제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좌익게릴라들의 발판을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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