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간가족|「기른 정」16년 서울 용산구 후암동 노문천씨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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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태어나고 넉 달만에>
『우리 성민이를 보고 있으면 인연이란 정말 묘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더 짙다는 것을 새삼 느껴가고 있으니까요.
이웃의 갓난아기를 데려다 기론지 16년이 되는 노문천씨(67·시인·서울 용산구 후암동143)정연식씨(66)부부는 2남2녀의 친자녀보다 뒤늦게 데려온 남의 자식에게 더욱 살뜰한 정이 간다고 말했다.
16년전, 노씨 부부의 막내 치용씨 (31·회사원)가 15살이 되던 해 대문 하나 건넛집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가 첫 딸을 낳았다. 가난에 쫓기던 젊은 부부는 아기를 돌볼 틈이 없었고 딱한 사정을 안 정씨가 가끔 아기를 집에 데려와 돌보아 주기 시작했다. 자녀들이 다 자라 짐 안에 아기가 없던 노씨 집에서는 가족 모두가 이 아기에게 정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 틈엔가 아기는 자기 부모에게 낯을 가리기 시작했고 노씨 가족들에게 와야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생후4개월. 노씨 부부는 아기부모와 합의하여 성민양을 아주 데려다 키워주기로 했다. 물론 기한을 정한 것은 아니었다.
정씨는 아기를 키우기 위해 기저귀를 마련하고 우유와 기타 육아용품을 사들이는데 새삼스러운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기가 울어 밤잠을 설쳐도 이상하게 조금도 싫지 않았다고 했다. 그 귀찮음은 오히려 자신의 자녀를 키울 때 보다 덜했다는 설명이다.
그후 아기의 친부모는 자식 하나를 더 낳고 삼천포로 이사를 가며 성민양을 데려갔다. 성민양이 3살 때였다.
『맏딸 혜숙이(35)가 약혼을 한때였어요. 그런데 아버지·어머니가 성민이가 보고싶어 노상 울고 있으니 아이들도 기가 막혔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혜숙이가 성민이를 데려다 놓아야 안심하고 시집이라도 갈 수 있겠다며 삼천포로 내려갔지요.』
삼천포에서는 성민양이 서울의 엄마·아빠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친부모도 하는 수 없다는 듯 아이를 선선히 내주었다. 그후에도 친부모가 두어 번 데려갔지만 그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해 끝내 돌아오고 말았다.
성민양까지 합해 1남3녀의 자녀를 가지게된 친부모는 지금 서울에 와서 살고 있으나 왕래가 그다지 많지 않다.

<집안일 잘돼 ″복덩이〃>
『우리 집에선 성민이를 복덩이라 말하고 있어요. 성민이가 온 후 모든 게 다 잘된 것 같아요.』
경기여고에서 13년 동안 교편을 잡고있던 노씨는 성민양을 데려올 당시 학원의 강사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도 다 썼고 사실 생활에 큰 자신도 없었던 시절이라고 노씨는 회고한다. 그러나 그후 이상하게 형편이 잘 풀려나가 참고서를 내는 출판사도 차리고 수입도 늘어났다. 기독교신자인 노씨는 이런 것이다 성민양을 데려다 키운 덕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민양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노씨부부는 극성스런 부모로 유명해졌다.
정씨가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성민이 엄마 왔다』고 떠들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성민양은 지금까지 우등상·개근상 등 상장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성민이를 어려서부터 키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동안 친지나 친구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혹시 노씨가 밖에서 낳아 데려온 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성민양의 성이 김씨인 것을 알고 그 의심은 쉽게 풀 수 있었다고.
성민양에겐 어려서부터 친부모·양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그 문제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노씨의 말.
『자녀들이 결혼하면 나간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한명, 한명씩 내보내 놓고 나니 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할 수가 없어요. 그 쓸쓸함을 달래줄 수 있었던 인물이 바로 성민이지요.』
성민양마저 결혼해 내보내면 그때의 허전함은 비유할 것이 없을 것 같다고 정씨는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고아문제 해결방법>
고등학교와 대학졸업 후 결혼한다고 해도 앞으로 7년.
『어떻게 떨어지나 하고 걱정을 하면 성민이가「난 시집안가고 디자이너가 되어 돈 벌면서 엄마하고 같이 살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은 흐뭇하지만 결혼은 시켜 주어야지요.』
그때를 생각해서 노씨 부부는 맏아들 건용씨(36·회사원)의 아들 대원군(4)을 어릴 때부터 데려다 키우고 있다. 노씨의 친손자는 모두 9명.
『대원이는 성민이를 고모라 부르며 곧잘 따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정씨의 고향은 충남이지만, 노씨는 함남에서 혼자 월남한 몸이어서 친척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성민양에 대해 정씨보다 더 정성을 쏟는다고.
성민양 만을 생각한다고 친자녀들이 투덜거릴 때면 『이 아이는 복덩어리』라고 노씨 부부는 늘 추켜세운다.
『미국에 가보니 그곳 4O대·50대 부부가운데 고아들을 데려다 정을 붙이며 키우는 사람이 많더군요. 우리 나라도 가난한 이웃의 자녀나 고아·기아가 많지 않습니까. 자녀들이 다 자란 가정에서 이들을 데려다 키운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아요. 함께 살면 친자식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노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고아나 기아문제를 이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의하기도 한다. <김징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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