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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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도서실 책상 위에 엎드려 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상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의 격려가 큰 힘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의대 졸업장이 없으면 다시 아내의 자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지난 77년, 두 아이를 가진 38세의 재미동포 가정주부로 고대 의대 예과 2학년에 편입했던 남후남씨(43). 그가 마침내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 의사 자격시험(KMA)에도 합격했다. 지난해에는 미국의사 수련자격시험(ECFMG)에도 패스했다.
『미국에서 약사로 병원에 근무하면서도 늘 저는 의사였으면 하고 생각했었어요. 직접 환자를 맞아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의사직이 적성에 맞는다고 깨달았습니다. 미국에서는 학비도 비싸고 입학도 어려워 주저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정부가 해외동포들에게 대학 문을 넓게 개방, 용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남씨는 록펠러재단이 운영하는 뉴욕 스론캐더린 병원에서 약사로 근무 중. 국제 차관 알선 업에 종사중인 남편 손재용씨(48)와의 사이에 8살의 아들과 아직 젖먹이인 2살 짜리 딸을 둔 기혼의 직장여성이었다.
『소망하던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기저귀 보따리를 싸들고 두 아이와 함께 서울로 왔습니다. 이대 약대 졸업(62년)후 미국에 가서 피츠버그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끝냈지만 10여 년 만에 시작한, 학교생활에의 적응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18∼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어린 동급생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아침 7시에 책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나서면 곧장 학교도서실로 직행한다. 학과가 모두 끝나도 밤10시 도서실이 닫힐 때까지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두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다.
『도서실이 추워 동상에 걸리기도 했고, 나중에는 깔고 앉았던 전기방석 과열로 화상을 입기까지 했어요. 5년 동안별을 보며 학교와 아파트만을 오갔기 때문에 서울 지리도 몰라 일요일에 도서실을 가는 길에 등산복 차림의 일가를 만날 때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어요. 지난 5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홀아비 생활을 불평 없이 견뎌준 남편이 정말 고맙다는 생각입니다.』
금년 고대 의대를 졸업한 남씨는 오는 9월 미국 뉴저지병원에서 레지던트 수련에 들어간다. 『힘들게 공부한 만큼 더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그는 만학의 보람 속에 앞으로의 생을 살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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