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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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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저는 직업의 특성상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합니다. 촬영할 때야 말이 필요없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때도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주말이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로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아내나 아이들이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겠지만요.

지난 주말엔 아들의 자전거가 고장나 아빠 노릇을 좀 했습니다. 사실 바퀴의 바람이 빠져 펌프로 바람을 넣고 삐걱삐걱 소리나는 걸 손을 봐준 정돕니다. 그리곤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놀이터로 나갔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 퀵보드 등 다양한 놀이기구를 저마다 가지고 나와 꽤 많은 아이가 모여 있었는데 그때 조금은 익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가 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두발 자전거도 아닌 네발 자전거를 보호장비를 완벽하게 하고 타고 있더군요. 주변 아이들 중에도 보호장비를 한 아이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이고, 자전거 타는 아이들은 아무도 저의 아이를 포함해 보호장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제 아들과 친구였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자전거도 능숙하게 잘 타는 것을 보며 '두발 자전거도 아니고 네발 자전거 타고 다쳐봤자 얼마나 다친다고, 부모들이 너무 과잉보호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아버지가 미국인인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 부부는 항상 아이들에게 보호장비를 철저히 챙긴다고 하더군요. 보호장비를 해야만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아니면 아예 못 타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점점 더위가 찾아오는데 보호장비를 하면 보통 더운 게 아닐 겁니다. 그리고 같이 노는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안 했는데 혼자만 그렇게 무장을 하면 그 아이는 '나만 왜 이래야 하나?' 할 겁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 아버지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군요.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몸에 배도록 가르치는 그들의 교육방식, 저의 가벼운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언제나 '처음에만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초반에만 조심조심 시키고, 능숙해지면 사라지게 되는 안전불감증. 저도 예외는 아닌지라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줬을 때 처음에만 착용할 것을 가르치고 능숙하게 타게 되었을 때는 상관하지 않았던 태도가 마냥 부끄럽기만 하더군요.

언젠가 TV에서 외국인 한 명이 교통사고로 차에 끼인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든 끌어내려 애썼을 테지만 그건 옳은 대처가 아니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차를 분해하고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끌어내면 더욱 부상만 커진다는 거지요. 천천히 하나하나 차를 분해해 그 사람을 꺼냈습니다. 평소 어렸을 때부터 익혀진 안전 의식이겠지요.

가끔 뉴스 중 잊을 만하면 나오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 소식을 접하면 '조심 좀 하지, 저런 식으로 하니까 사고 나지'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넘어갔었지만, 이제는 나 자신부터 실생활에서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안전에 관한 생활을 익히는 것, 그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제 무더운 여름입니다. 아무쪼록 모든 분이 안전사고 없는 휴가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추신-아들아, 이해해라. 이젠 아무리 더워도 헬멧을 꼭 써야 할 것 같다.

김상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