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의 여유] 돌담위 꽃…바닷가 돌 구르는 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이름도 아름다운 학문, 미학(美學). 그러나 도리머리를 흔드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보고 느끼는 대로 아름다움을 누리면 될 것을, 쪼개고 가르고 파고드니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대구 가톨릭대학의 정순복 교수를 만나면 달라질 겁니다. 그의 화두는 '일상과 미학의 융합'입니다. 일상을 소재로 자연스레 미학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그의 에세이는 곱고 그윽합니다.

"이른 여름날 아침, 시골 나의 촌집 돌담 위로 구기자 꽃가지들이 줄지어 가며 가지들마다 꽃 꽃 피우고 있었다. 앙증맞은 애기손 같은 구기자 꽃들, 이 가지 저 가지 올망올망 마음 흔들어 댄다. … 구기자 꽃의 맛, 나쁜 예술이라던 키취의 맛?"

그의 에세이집 '사계의 미학, 여름'(예전사)에 실린 한 구절입니다. 난데없이 끼어든 '키취'가 걸리긴 하지만, 글 자체가 한 편의 서정시 같습니다.

여기에 '키취는 흙을 가지고 추하게 논다는 독일어 키췐(kitschen)에서 비롯돼 '나쁜 예술'을 뜻하는 비평용어로 사용되다…'라고 주를 달았습니다. 굳이 미학을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그 어렵다는 미학의 개념이 쏙쏙 들어옵니다. 그가 이미 '일상의 미학' 시리즈를 상재해 소리 소문없이 아낌을 받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나는 여름, 무슨 미학타령이냐고 타박할 게 아닙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 하염없이 돌 구르는 소리에 마음 놓아 버린 적 있는가? 내 마음 다 가져가도 좋을, 혹 남아 있는 마음 있거들랑 돌과 함께 굴러다녀도 좋을, 그래서 언제나 출렁거리며 그렇게 한 세상 살아도 좋을!" 이런 글 한 구절만 건져도, 여름 저녁 샘물을 길어 등목이라도 하는 느낌일 겁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거라고.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