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들이 독자적인 포교에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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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불교 이대로 좋은가?』 물리적인 승단 정화와 꼬리를 무는 사찰분규로 얼룩진 오늘의 불교현실을 타개하려는 신도들의 간절한 개혁원력과 비판이 담긴 한 불교세미나의 부제다. 불교계는 최근 사찰·승려 중심의 퇴영적인 폐습을 타파하고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대중 불교를 이룩하겠다는 재가신도 중심의 거센 「개혁바람」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불교 정화운동을 외치는 함성이 일고있다.
조계종 전국신도회는 지난 13일 동국대 교수 세미나실에서 불교계 현실을 깊이 자성하는 불교지도자 특별수련 세미나를 갖고 태고종단을 포함한 초종파적인 전법사·전교사 72명을 독자적으로 임명, 불교혁신을 겨냥한 팡파르를 울렸다. 신도회가 독자적인 포교활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1차 임명한 신도 포교사는 동국대 불교대 교수 전원을 비롯한 신도교수, 종립학교 교법사, 신도운동 지도자 등-.
서돈각 전 동국대 총장, 홍정식·이기영·박선영(동국대), 김하우(고대) 교수, 박완일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이 이번에 임명된 신도회의 주요 전법사들이다. 특히 범 종단적 구성에 따라 태고종 종립학교인 대전 보문고 교장 이재복씨도 들어있어 아주 이채롭다.
이들 신도 포교사는 주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자기 집을 개방, 불교 교리를 설법하고 수시로 교도소·구치소·노인정·고아원 등을 찾아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신도회가 교화위원회법을 새로 제정, 제도화한 전법사와 전교사는 복제도 갖추어 학사복 같은 검은 가운을 입고 교계별로 「법륜문장」(반경 19.5cm)을 패용토록 했다. 패용 문장은 전법사가 금색 수문법륜장, 전교사는 은색 수문법륜장.
자격은 재가 5계를 품수하고 인격과 덕망을 구비한 자로 ▲전법사=불대졸 5년 이상, 일반대졸 7년 이상의 포교 경력자 ▲전교사=불교 전문대를 2년 이상, 고교졸 5년 이상의 포교 경력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불교신도들의 독자적인 포교운동 선언은 승단 혁신 및 신도의 종단운영 참여를 깊숙이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불교계 내외의 큰 주목을 모으고 있다.
신도회가 이처럼 나서게된 배경은 불교를 승려만의 전유물처럼 보는 풍토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숙원의 의지로부터 비롯됐다.
또 하나는 이제 한국불교를 앉아서 찾아오는 신도들한테 불공이나 시주를 거둬들이는 「받는 불교」로부터 신도를 찾아나가서 보시를 베푸는 「주는 불교」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
신도회는 오래 전부터 『종단은 4부대중(비구·비구니·남신도·여신도)으로 구성한다』는 종헌의 명문대로 신도의 실질적인 종단참여를 시도해 왔으나 번번이 철옹성 같은 승단의 배타적 장벽에 부딪쳐 좌절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신도의 종회 참여를 주장해온 이 같은 신도회 측의 요구는 78년 조계종단 분규과정에서 강력히 대두됐으나 끝내 실현을 보지 못했다.
조계종 전국신도회는 마침내 지난해 10월 자체적인 법사양성을 통한 포교활동을 결의했고 이번에 그 1단계 실천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박완일 회장은 신도회 결의 후 비구·비구니만을 승단으로 인정하는 조계종단을 향해 『불교가 승단의 독점물이라면 우선 모든 유발·대처승단은 불교가 아니라고 선언할 것』을 거듭 촉구해 왔다.
그리고 불교 어느 경전에도 승려만이 불법을 전하라는 귀절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일본·대만 등의 처사화 한 대처불교를 불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하는 한국 비구·비구니의 불교현실을 통박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질미달의 승려보다 훨씬 훌륭한 포교능력을 가진 독실한 신도의 전법활동이나 종단운영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신도회 포교활동이 지향하는 중요목적의 하나인 「찾아 나서는 불교」의 체질화는 신도들을 내려다보는 일부 승려들의 그릇된 자세를 바로잡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불교는 자각의 종교이므로 승려와 신도, 모든 중생까지가 부처님 앞에 대등한 존재일수 밖에 없으며 승려의 어떤 절대성이나 특권의식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신도회는 스스로의 자각적인 포교 활동을 통해 강력한 신도 의식화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신도회의 개혁의지는 승단과의 대립보다는 다같이 불교진흥을 향한 상호협력의 병립관계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어쨌든 승단의 두터운 장벽과 권위의식을 허물고 신도의 의식화 및 조직화를 기해 침체한 불교현실에 대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신도들의 절규 어린 염원은 험난한 앞길에의 염려와 함께 기대를 해볼만하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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