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실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의 외항선 증산호 선장 강덕오씨의 귀순은 최근 북한주민의 생활상은 물론 그동안 배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 대외무역의 단편적인 실상을 엿볼수 있게했다.
북한은 모든 통계숫자의 공표를 극히 꺼리고 그나마 프로퍼갠더용 수자나 과장하고 있어 정확한 그들의 경제실태를 파악하긴 어렵다. 짐작으론 81년 대외무역이 수출·수입 각기 15억달러 안팎에 이른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겨우 우리의 10%수준에도 미달하는 것이며 강선장이 폭로한 외항선의 노후화와 외항선원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도 이같이 영세한 무역규모에 기인한 것같다.
강선장이 탔던 증산호는 1만4천t급 화물선으로 3년전 폴란드에서 1백80만달러를 들여 도입한 중고선이다. 북한의 선박도입은 화물선에만 그치지않고 원양어선도 외국것을 사오는데 주로 소련·불가리아·일본등이 도입선이다. 결국 북한 조선공업의 일반적인 낙후성을 증명해준다. 80년말에 최대 원양모선이라는 용남산호(1만4천t급)를 건조한 원산조선소도 최대건조능력은 9만2천t에 불과해 우리와는 비교도 할수없다.
증산호가 수출하는 상품이 주로 철광석과 무연탄등 1차산품에 불과한 것은 짐작이 가는 일이나 아프리카제국에 무기를 수송한것을 보면 제3세계소요의 배후에 북한이 개재돼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외항선을 통한 소위 노동당간부들의 부패상에는 쓴웃음마저 나온다. 「붉은귀족」은 북한에도 예외없이 잠재해 있었다.
외항선원의 밀수행위는 대개 이기적식욕 때문이며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띈다. 그리나 강씨가 폭로한 북한의 실정은 그곳의 경공업제품이 너무나 조악해서 「고위직인사」들이 외제일용품을 찾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로 애용하는것이 시계·녹음기·계산기·양복지·학용품·항생제등이다. 그 사회의 수준을 짐작할수 있다.
밀수방법은 북한을 떠날때 황동괴나 아연판을 갖고나가 외국항구에서 처분한 다음 대신 일용품을 사들여온다. 그나마 외항선원은 대우가 좋은 편이라 그자리를 유지하려면 고위간부에게 외제시계 하나라도 상납해야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부패가 자본주의경제의 전유물인 것처럼 선전하는 그들의 내면은 그 어느 사회에 못지않게 모순과 허구로 차있다.
더욱 가관인것이 「충성의 축전기간」 설정이다.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까지가 바로 이기간인데 「생산계획 조기달성」, 「기념건물 완공기간 앞당기기」등이 사업목표다. 외항선박에도 「김일성 70회생일준비 요강」이 시달됐으며 온갖 방법으로 선원의 노동력을 혹사해 운항비용을 절감하고 이 금액을 선물로 헌납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의 경제용어론 「사회주의 경쟁운동」이라고 부르는데 개인의 소득증대로 연결되는 우리의 생산경쟁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북한은 이미 민족통일협의회를 만들어 단계적 통일방안을 마련하자는 전대통령의 「1·22제의」나 통일원장관의 대북 「20개시범사업제의」를 거부한바 있다.
이것은 김일성-김정일의 세습체계가 남북의 긴장이 계속되어야만 유지될수 있다는『반민족적 판단』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었다. 강선장의 귀순증언에 나타났다시피 북한은 지금 김정일체제로의 안전이행밖에 어떠한 통일노력에도 관심이 없다.
북한주민들에게는 고려연방제만이 유일한 평화통일방안이라고 선전하면서 우리의 제의는 알리지도 않고있다. 더우기 주민들에대한 이른바 사상교양에서는 『남조선은 혁명을 통해야만 해방시킬수 있다』 『언젠가는 한번 전쟁을 해야한다』고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북한주민 가운데는 이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많다는 강선장의 증언을 듣노라면 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져만가는 느낌이 든다. 북한당국은 주민에 대한 기만과 멸시와 탄압을 거두고 민족대화의 광장으로 나올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