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30. 여필종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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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춘.이기동.배연정씨 등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마음 약해서'(1979년작)의 한 장면.

서지숙은 "쉬잇"하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다. "배 선생님 방은 저쪽이에요." 그는 내 팔을 잡고 건넌방으로 데려갔다. "위병소 앞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왜?" "왜긴요. 걱정돼서요."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큰형 집을 찾아갔다가 아버지를 만난 일, 아버지가 피란길에서 겪은 고생담, 춘천의 어머닌 아직 생사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지숙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만히 보니 울고 있었다. "저는 악극단을 따라 지방을 떠돌다 전쟁을 만났어요. 가족의 생사도 몰라요."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둘 뿐인 공간이었다. 나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힘겹게 울음을 삼키는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는 내게 얼굴을 기댔다. 그리고 더욱 서럽게 흐느꼈다. 나는 가냘픈 그의 어깨를 꼬옥 안았다. 그의 머리카락이 코에 닿았다. 산뜻한 비누 냄새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콩 뛰었다.

시간이 흘렀다.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들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 아직도 눈물이 흥건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그의 눈물을 닦았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따뜻했다. 지숙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였다. 그와 나의 첫날밤이었다.

오랫동안 내 가슴은 불모지였다. 김화자가 떠나간 이후, 이런저런 여자가 세월을 타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내 가슴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황무지처럼 황폐한 가슴. 다시는 꽃이 피지 않을 줄 알았다. 내 삶에 두 번 다시 사랑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가슴 속 얼음장에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동틀 무렵, 첫 닭이 울었다. 나는 밤새 고민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 군예대 생활을 그만두는 게 어떨까. 둘이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지숙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필종부니까요. 그럴게요."

장교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있어달라"며 나를 붙들었다. 그러나 이미 결심한 뒤였다.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던 군예대를 그만 두었다. 열흘 뒤 우리는 부대를 떠났다. 그리고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댈 곳은 피를 나눈 형제 밖에 없었다. 지숙을 데리고 무작정 큰형 집으로 갔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했다.

문제는 방이었다. 큰형 집은 방이 모두 네 개였다. 그런데 두 개는 다른 피란민들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큰형 부부가, 또 하나는 아버지와 조카가 쓰고 있었다. 결국 조카는 큰형 부부와 자고, 우리는 아버지와 한 방을 썼다. 지금은 '동거 먼저, 결혼 나중'도 다반사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남녀의 동거는 집안의 큰 흉이었다. 그나마 전쟁이 유일한 핑곗거리였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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