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의 배틀배틀] '99초 잡아라' 팀워크훈련…얕보다 피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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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프로 게이머에게 팀워크는 무척 중요하다. 각종 전술과 전략을 짜는 회의, 개인전을 대비한 연습 파트너, 그리고 단체전에서 팀의 하모니는 결정적인 승부처다. 올해 초였다. 소속팀은 경기도 이천의 SK연수원과 설악산을 오가며 전지훈련을 했다. 이른바 '팀워크 빌딩 훈련' 이었다. 우리는 3박4일 동안 값진 교훈을 얻었다.

전지 훈련 이틀째였다. 올해 계획된 연간 훈련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끝났다. 그리고 본격적인 팀워크 훈련이 실시됐다. 훈련명은 '99초를 잡아라'. 이 훈련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선수단도 거쳐갔다고 했다. 경기 규칙은 간단했다. 여섯 가지의 과제를 99초 안에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물 통과, 다음엔 눈 감고 그물 통과, 무인도, 공 튀기기, 돌아가며 봉잡기, 단체 윗몸일으키기 등이었다.

너무나 쉬워 보였다. 진행자는 "지금껏 200여 개의 조직이 참여, 단 두 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프로게이머였다. 나이도 젊었고, 감각도 젊었다. '누워서 떡 먹기'였다. 팀원들은 "아예 신기록을 세우는 게 어때?"라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기회는 세 번이었다. 중간에 파울을 범하면 실격이었다. 나는 주장을 맡았다. 팀원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정했다. 우리는 자신만만하게 "화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줄지어 임무를 수행했다. '이 정도 속도면 시간이 남겠지.' 마지막 임무를 끝냈을 때 시계를 쳐다봤다. 믿기지가 않았다. '118초'였다.

팀원들은 뜻밖이란 표정이었다. "너무 느긋하게 생각했나봐" "괜찮아, 괜찮아. 이번엔 마음먹고 해보지 뭐." 두 번째 시도였다. 팀원들은 느긋한 마음을 버렸다. 몸을 내던지는 허슬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팀원이 그물을 빠져나갈 때 "딸랑 딸랑" 방울이 울렸다. 진행자가 "휘익!"하고 실격을 선언했다. 너무 서두른 나머지 파울을 범한 것이다.

팀원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제 남은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 진행자는 "여성만으로 꾸려진 팀들도 과제를 거뜬하게 수행했다. 3차에 걸쳐 실패한 팀은 홈페이지에 팀명이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게임 경기에 출전했을 때를 생각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우리는 그걸 놓치고 있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위기에 몰릴수록 게이머의 마음은 급해진다. 그럼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더욱 말을 안 듣는 법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보다 각자의 의욕을 앞세웠다. 그래선 팀워크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팀원들과 의논 끝에 '개인기' 대신 '팀워크'를 승부수로 띄웠다. 마지막 3차 시도였다. 우리는 신속하고 침착하게 움직였다. 나보다 전체를 봤고, 목표보다 과정을 봤다. 마지막 윗몸 일으키기를 끝냈을 때 시계를 봤다. '88초'. "우와아아!" 함성이 터졌다. 팀워크, 그건 동료에 대한 신뢰와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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