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외환 시중은행에 대출 계획…한은, 발표 싸고 오락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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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은행이 '외화대출 연계 통화스와프 제도'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10분 만에 회수했다가 6시간 뒤에 다시 발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한은은 15일 낮 12시 재정경제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 발표시점에 맞춰 한은 보유 외환을 은행들이 보유한 원화와 일정 기간 바꾸는 방식으로 은행의 외화대출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또 오후 2시 담당자가 설명회를 열 계획이었다. 이는 전날 한국은행 보도 일정에 긴급하게 추가됐었다.

이런 계획에 따라 한은은 이날 오전 11시40분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부랴부랴 회수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후가 되자 한은은 또다시 입장을 바꿨다. 이날 오후 5시50분 해당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했다. 금통위 승인이 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날 금통위 협의회에는 박승 총재가 전국 중.고등학교 교장 발령예정자 경제특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금통위원 1명이 추가로 불참해 5명만이 참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금통위 협의회가 끝난 시점에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나 금통위가 보도자료를 취소하고 긴급 회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몇 시간 뒤 "다시 배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초 이 안이 통과되지 못한 데 대해 한은은 금통위 협의회에 참석한 5명의 위원 가운데 일부 위원이 정식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한은 안팎의 분석이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에 외환보유액을 시중은행과 스와프 계약을 통해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고, 한은도 이에 맞춰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한은 주변에서는 금통위원들이 절차상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거나 안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화대출에 대한 새 제도의 도입인 데다 외환보유액의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금통위 본회의 의결사항인데, 한은 집행부가 정식 의안 제출도 하지 않은 채 법적 효력이 없는 금통위 협의회 보고로 일을 마무리하려 한 데 대한 불만이라는 분석이다.

또 정부의 해외투자활성화 정책 발표에 맞춰 일정을 무리하게 짜는 바람에 금통위원들이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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