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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영'의 초라한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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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파리특파원 시절이던 1996년 5월 28일 기자는 파리를 찾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10여 명의 특파원을 초청한 오찬 간담회에서였다.

낡은 취재수첩을 뒤적여 봤다. 그는 "젊은 때의 경험을 해외에서 유용하게 펼치도록 중역들을 해외에 보내 근무시키겠다"는 등 두시간에 걸쳐 '세계경영'을 역설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가벼운 농담이나 신상에 관한 얘기조차 없는 건조한 '강연'으로 기억된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은 알랭 쥐페 당시 총리 집무실에서 열린 '레지옹 도뇌르'(프랑스 최고 훈장) 서훈식이었다. 그를 축하하러 온 30여 명의 프랑스 정.재계 인사가 눈에 띄었다. 쥐페 총리가 그의 어깨를 감싸며 친분을 표시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세계경영이 본궤도에 오르던 그해 10월 그는 프랑스 전국을 놀라게 했다. 대우전자가 세계 4위의 프랑스 국영 가전업체인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중국의 하이얼전자가 한국의 삼성전자를 통째로 삼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초라한 모텔에는 대우 TV가, 특급 호텔에는 톰슨 TV가 켜졌다.

인수 조건은 더 놀라웠다. 톰슨이 안고 있는 2조2400억원의 누적 부채를 떠맡고 단돈 1프랑(160원)만 지급한다는 수완을 발휘했다. 자기 돈 한 푼 안 넣고 국제자본시장에서 돈을 끌어들여 회생시키겠다는 그의 말과 능력을 프랑스 정부는 믿었다.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는 "대우는 높은 임금을 무릅쓰면서 프랑스의 잠재력에 투자하는 것이며 이는 프랑스 소비자에게 이득이 된다"며 지지했다.

아쉽지만 톰슨 인수 계획은 '한국의 김우중'에게 '프랑스의 자존심'을 넘길 수 없다는 명분론에 밀려 좌초했다. 하지만 '톰슨 사건'은 그가 아니면 도전할 수 없는 도박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론이 공허한 구호가 아님을 입증한 사례였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고, 그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 해외를 전전했다. 그럼에도 유독 프랑스는 그를 감쌌다. 인터폴 수배자인 그에게 남부 휴양도시 니스에 별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프랑스 기업의 고문으로 고용돼 월급을 받아도 눈감아 줬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프랑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기업인'으로 규정하고 돌아왔다. 일각에선 성급한 선처론과 사면론을 들먹거린다. 하지만 프랑스와 우리는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국내에는 그가 거덜낸 회사 때문에 정리해고의 고통에 시달린 수많은 노동자가 있다. 분식회계와 사기 대출, 외화 유출 등 그가 주도한 각종 비리와 불법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화려한 세계경영의 이면에 새겨진 상흔들이다.

그는 대우사태의 진실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경제에 기여한 부분도 평가받을 수 있다.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한 불운의 기업인으로 역사에 남으려면 더욱 그렇다. 사법적 단죄와 인간적 동정에 대한 논의는 그 이후의 문제다.

96년의 간담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소유의 개념은 끝났고 계열 기업들은 독립적인 삶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행동으로 옮겼더라면 그는 지금쯤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때를 놓친 과욕이 김 전 회장을 오늘의 초라한 피의자로 추락시켰다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