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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돈으로도 살 수 없으나 공짜나 다름없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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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연수
소설가

적어도 내가 사는 일산에서는 책이 공공재에 가까운 듯하다. 일산에는 동네마다 하나씩, 모두 15개의 도서관들이 있어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이러다가 소설가는 뭘 먹고살지?”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래서 웬만하면 책을 사서 읽는 편이지만, 서가를 거닐다가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해서 도서관을 즐겨 찾는 편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도 그렇게 만났다. 이럴 땐 길에서 돈을 줍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책을 빌리면 오후 내내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독서를 하기도 한다. 커피 한 잔 값이면 햇볕이며 음악이며 사람들이 담소하는 풍경까지 즐길 수 있다. 지난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빵집을 하면, 그것도 소도시에서 빵집 주인으로 살면 참 좋은데?”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의 저자인 와타나베 이타루(渡<9089>格)는 인구 8000여 명의 가쓰야마에서 다루마리란 빵집을 운영하는데, 꽤 근사하게 살고 있다.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일년에 한 달은 휴가를 간다니 말이다.

 그러다가 ‘착취하지 않는 경영 형태-이윤 남기지 않기’라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삶이 무엇일까? 이 말은 묘하게도 『동물들의 침묵』을 쓴 존 그레이의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아예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게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 돈을 벌면서 이윤을 남기지 않기와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지 않기는 상통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이윤이나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될 때 우리는 ‘허구의 나’를 뒤쫓고 있는 셈이다. 그 허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본모습을 대면하는 것, 그게 바로 이윤을 남기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삶이리라.

 다루마리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술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예전 같으면 가쓰야마는 고립된 소읍에 불과했겠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일본 전역에 연결된다. 유통망 역시 발달해서 하루면 도쿄에 빵을 배달할 수 있다. 덕분에 집세·인건비 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비용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이윤을 없애니 빵 만드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그가 지역에서 자란 밀을 자가제분해서 천연 효모로 발효시키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윤을 좇아서 하루 종일 일할 때에 비해 천천히 빵을 만드는 일이 훨씬 더 행복한 건 당연하다.

 최근에 나온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자본주의와 관련한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한다. 하나는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려는 기업가 정신이 빅데이터를 만날 때 경제 전반에 걸쳐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진다는 것. 이때 이윤은 고갈돼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거의 무료에 가깝게 공급된다. 또 하나는 생활의 기본적인 편의 시설과 안정성을 갖출 수 있는 정도의 소득에 도달하면, 인간의 행복 수준은 정체된다는 연구 결과들. 일정한 소득 수준을 넘어서면 더 많이 번다 한들 행복해지지 않는다.

 리프킨의 주장대로 인터넷, 스마트 기기, 물류망, 교육시스템 등 공공 인프라의 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낮아진다면, 지금보다 소득이 줄어들더라도 행복 수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 읽으며 나는 리프킨의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정부에서는 저성장이 계속되면 우리의 삶에 겨울이 찾아올 것처럼 말하지만, 세월호의 교훈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진짜 겨울은 초고속으로 성장하며 이윤을 극대화했을 때 우리에게 찾아왔다.

 서로 적대시하며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겨울왕국의 사람들에게는 억만금이 있다고 해도 유월의 햇살 한 조각을 살 수 없다. 여름에는 온 천지에 공짜로 널린 게 그 햇살이건만. 겨울 한파 속에서 떠올리는 여름의 햇살처럼, 세상에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있다. 타인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이 그런 것이다. 소유에서는 ‘공유’하고, 관계에서는 ‘공감’하고, 삶에서는 ‘공생’할 때 우리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