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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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닌」은 독살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소련 특유의 권력 구조를 생각하면 그런 의심이 안가는 것도 아니다.
아뭏든 「레닌」의 뒤엔 줄곧 권력투쟁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휴전이 없었다. 휴전은 커녕 암투는 더욱 가열되었다.
「스탈린」은 조직의 명수였다. 그는 당의 중추부에 「서기국」이라는 강력한 기구를 만들었다. 권력을 지키는 성벽을 쌓은 것이다.
「스탈린」이 죽고나서 「흐루시초프」체제가 굳어지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마땋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렌코프」 「불가닌」이 권력의 바통을 받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흐루시초프」가 「말렌코프」의 자리를 빼앗을 무렵 (1957년) 최고회의 간부회의(정치국)의 「산술적 다수」는 반「흐루시초프」였다. 11대 2로 그는 불리했다.
이 때 「흐루시초프」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당 중앙위원회의 소집이었다. 그는 이 위원회의 다수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도 결국 권력음모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KGB(비밀경찰)의 모반이었다. 「흐루시초프」가 해임되고 나서 KGB 요원이 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에 다수 등용되었던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크렘린의 후계자 선택은 간부회(정치국) 멤버들의 비밀협상에서 결정되는 것이 관례이다. 결국 누가 그 정치국을 관장하느냐가 문제다. 이 과정에서 혈투도 있고, 음모도 있다. 또 시간도 필요하다.
요즘 「수슬로프」의 급사는 소련의 권력구조에 공백과 긴장을 몰고 올 것 같다는 것이 외신의 분석이다. 그는 소련공산당의 2인자이긴 하지만 점찍힌 후계자는 아니었다. 우선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중앙위 서기겸 정치국원이며 이론가인 그의 막강한 타이틀과 실력은 대부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현재 서기국원과 정치국원을 겸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4명이다.
그러나 이들도 예외없이 고령이다. 70대 후반의 나이가 현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는 그 사회에서도 하나의 문제다.
「브레즈네프」가 서기장이 될 때의 나이는 아직 57세였다.
언젠가는 죽거나 은퇴할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을 인물은 아직 없다. 중재자도 대부마저도 없는 셈이다.
이것은 소련만이 아니라 독재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적 비극이다. 중공의 모택동이 죽고 나서 화국봉이 우세한 것 같이 보였지만 그도「과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 동안의 권력투쟁은 세계인이 흥미 깊게 보아온 일이다. 「수술로프」의 급사보다도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바로 독재국이라는 소련 특유의 권력구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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