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피살사건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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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개월여를 두고 세인의 이목을 모았던 박상은양 피살사건의 「범인」추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혐의자는 박양의 또 다른 미국연수 동기생 정모군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 발표는 검찰이 한 것이다. 지난 번 『확신을 가지고』 범인이 J군이라고 주장한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모두 국가기관으로서 범인을 가려내는데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각각 가려낸 혐의자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이 결과는 둘 중 어느 한쪽이 옳든가 아니면 둘 다 그를 수가 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미지수다. 다만 지금 검찰의 발표로 J군은 혐의에서 풀려나고 정군은 구속되어 계속 수사를 받고있다. 또 경찰은 서울시경국장의 공식 성명을 통해 그 동안 수사상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러니까 지금「진범」으로 발표된 정군의 혐의는 확정적이라는 인상을 주고있다.
그러나 과거에 경찰이 J군을 진범으로 단정하고 송치했을 때도 똑같이 「99%의 심증」을 내세워 「확정적이라는 인상」을 사화일반에 주었었다.
따라서 사회에선 이번 검찰의 정군 구속에도 선뜻 의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수사결과가 어떻게 판가름날 것인가에 대해서 지금 누구도 단정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박양 사건 수사과정을 보면서 우리 경찰과 검찰의 「수사」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인신구속의 관행이다. 수사상 필요하다고 해서 『애매한 사람』을 「임의동행」하고, 「억지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면 이는 엄연한 위법이다.
범죄자라도 범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인격이 존중되어야함은 법치국가의 상식이다. 하물며 용의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단순한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월권이요, 직권남용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마구잡이로 꿰어 맞춘 수사결론을 과학수사라는 미명하에 적용하려했던 점도 지적되어야겠다. 용의자의 것이 틀림없다고 발표했던 「치흔」으로 J군을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았던 「과학수사」의 신뢰도도 문제다.
비록 서울시경국장이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과학수사 체제를 더욱 보강,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그「과학수사」도 적용여하에 따라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분명한 일이다.
「과학수사체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인권존중을 위해 운용되어야 제 가치를 발휘하는 것도 지적해야할 것이다.
수사기관의 자만과 나태도 아울러 지적해 두고자 한다. 확실치도 않은 수사결과를 기반으로 엉뚱한 혐의자를 검찰에 송치해놓고 수사를 종결해버린 수사당국의 처사는 바로 그 단적인 증거다. 수사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해 「심증」도 「자백」도 아닌 1백%의 확실한 증거를 찾아 제시하는데서 종결될 수 있다.
그것이 수사의 본령이요 원칙이다. 범인체포의 공적만을 앞세운 허장성세의 수사는 이제 우리도 버려야할 때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박상은양 피살사건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될 사건이지만 특히 수사와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많은 반성의 자료를 제시해 주고있다.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나 수사관계의 종사자들로서는 깊이 느끼는 바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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