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

서울에서 100년 된 카페를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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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알베르토 몬디
JTBC ‘비정상 회담’ 출연자

지금 직장으로 옮기기 전 3년 동안 맥주 영업을 하면서 서울의 수백 군데 커피숍·술집·레스토랑·라운지·클럽을 방문했다. 한국인과 직접 부딪치는 주류 영업사원 생활에는 빨리 적응했다. 하지만 전혀 익숙해질 수 없었던 일이 하나 있다. 찾았던 매장이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일이었다. 좋게 보면 이탈리아와 사뭇 다른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다.

 이탈리아에선 매번 같은 가게에 가기 때문에 주인이나 직원과 한 가족처럼 친해질 수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자주 가서 식사했던 한 레스토랑에선 아예 메뉴도 보지 않는다. 우리 가족의 취향을 잘 아는 웨이터가 알아서 원하는 음식을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탈리아인의 일상이다. 일요일에 미사 뒤 어머니가 과자를 사줬던 케이크 집, 중학생 때 방과 후 샌드위치를 먹던 가게, 고교 시절 추운 겨울에 따뜻한 핫초콜릿을 마셨던 커피숍, 대학 친구들과 한잔하며 축구 경기를 함께 봤던 술집은 아직도 내 고향 베니스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곳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같은 곳에서 내 옛날 추억과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의 술집이나 바는 리모델링을 했지만 대개 개업한 지 50년이 넘었다. 100년이 넘는 곳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에는 중세 때인 13세기에 생겨 지금까지 800년 동안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가게도 곳곳에 있을 정도다. 그런 곳에는 한 나라와 주민의 역사가 보존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직접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토스카나주 피사에선 아고스티니 집안이 1775년부터 6대에 걸쳐 그 유명한 카페 델루세로를 운영하고 있다. 고향 베니스의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 문을 열어 바이런·괴테·루소·헤밍웨이 등 유명한 사상가와 문인이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글 속에 도시의 일상을 그렸다. 이처럼 커피숍이나 술집·호텔에는 오랜 시간 동안 그곳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이런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몇 십 년 동안 매일 커피를 마셨던 카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늘 똑같은 환경은 사람들을 일상에 안주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변화를 두려워하게 한다. 한국에서 일한 영업사원으로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도전을 해라”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한국인에게는 “추억과 역사가 깃든 장소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통해 한국 특유의 매력을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알베르토 몬디

※ 이탈리아 베니스 출생. 피아트크라이슬러코리아 영업팀 근무. JTBC ‘비정상 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