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은 인간과 자연의 중재"|국토개발연구원 주임 이영희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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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쾌적한 환경,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인간의 꿈은 인류탄생이래 계속돼 오고 있는 불변의 소망인지도 모른다.
조경 사-. 아직은 귀에 설 지만 바로 이러한 인류공동의 꿈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 조경이 뿌리를 뻗기 시작한 것은 72년 한국조경학회창립에서부터. 60년대「불도저 식 국토개발」로 손상된 자연을 회복하려는 정부의「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72∼81)」과 발맞춰 탄생됐다.
한국조경의 태동기부터 적극 참여, 10여 년간 고락을 함께 해 온 이영희 양(32·국토개발연구원 국토계획 부 주임연구원)은 조경에 인생을 건 몇 안 되는 개척자중의 한사람이다.
『대학(고대 임학과)때 지도교수이신 김장수·윤국병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국내에서 새로 시작되는 학문이라는 점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무엇보다 자연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녀적(?) 동경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어깨를 살짝 덮는 긴 생 머리에 아직도 간간이 애티가 엿보이는 그는 빠른 말씨만 아니라면「맹렬 여성」임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다.
75년 대학원졸업과 함께 한국종합조경공사에 수석으로 입사, 주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국토계획조사연구단(현 국토개발연구원 전신)연구위원을 거쳐 78년 동 연구원설립과 함께 이곳으로 왔다.
그간 그가 해내 온 큼직한 조경사업만도 국립묘지수경계획·비원수경계획·대전기계 창 조경계획 등 여러 개. 특히 금산 칠백의총의 조경은 거의 1백% 그의 원안이 반영된 자랑거리다.
『계획한 것이 실행에 옮겨졌을 때가 가장 기뻐요. 그러나 상부의 아집이나 명령으로 내용이 변경되고 창조성을 잃게 되면 무척 속이 상해요』 그는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제약조건이 늘 자신을 괴롭히는 양대 적이라면서 웃는다.
그의 조경신조는 자연과 가장 잘 조화되는 디자인이라야 한다는 것. 따라서 인공적인 것보다는 가능한 한 자연상태를 살리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태릉 국제사격대회조경당시 메인 빌딩 정면의 큰 나무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끝까지 자연상태로 둬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일도 그의 이러한 견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중의 하나다.
『조경은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조경 사란 인간과 자연사이의 중재자라는 느낌이어요. 한정된 지역의 좁은 의미의 조경이든, 국토를 대상으로 한 광의의 조경이든 조형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뤄야만 성공할 수 있어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미적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서슴지 말고 조경사가 되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는 조경 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중동 등 해외시장의 전망도 좋아 조경의 내일은 밝다고 거듭 주장한다.
스스로를 가리켜「사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그는『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인공으로 만든 자연박물관(생크추어리)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게 소윈』이라면서 그날을 위해 저축도 하고 있다고 살짝 들려주기도.
사업을 하는 이창렬씨(62)의 2남3녀 중 둘째딸로「베트벤」음악과 여행을 좋아하는 이양은『하나 남은 막내가 먼저 결혼하겠다고 하는데도 속수무책이지만 뜻과 행동이 넓고 크고 뜨거운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다』며 처녀다운 수줍은 미소를 입가에 남겼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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