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대통령 직속 위원회] 下. 국감 안받고 국회 답변 의무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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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이 맞다.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

지난해 11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책기획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제1회 국가경쟁력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각종 위원회가 너무 많고, 행정부 위에 군림하려 해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최근 동북아시대위원회가 행담도 개발과 'S프로젝트(서남해안 개발)'를 추진하다 물의를 빚었지만 위원회에 대한 노 대통령의 소신은 변함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통령이 이처럼 힘을 실어주고 있는 마당에 행정부가 위원회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실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의 입안은 대부분 위원회가 주도했다.

그러나 막강한 위원회의 힘과 하는 일에 비해 위원회에 대한 견제와 감시 장치는 미흡하다. 위원회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감사원의 감시를 받는다지만 행담도 개발사업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

?위원회 중심의 국정=참여정부의 국정 운영이 과거 정부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위원회다. 과거 주요 정책은 대부분 행정부가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정책수석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재가받는 수순을 통해 결정됐다. 중요한 사안은 대통령과 장관이 독대한 자리에서 정해졌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선 대통령과 장관의 독대가 거의 사라지고 대신 위원회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행정부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주요 국정과제의 수립과 정책 결정은 위원회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를 아예 각 위원장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했다. 해당 부처 장관으로선 관련 위원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형식상으로도 현 정부의 정책 결정은 관련 위원회와 장관이 참여하는 국정과제 회의에서 이뤄진다.

현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이 거의 대부분 위원회에서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과 옮겨 갈 정부 및 공공기관 결정, 국가 균형발전 5개년 계획, 쌀 협상 대책, 서남해안 개발 등이 그런 예다. 부동산 정책의 골간이 된 2003년의 10.29 부동산 대책의 입안도 위원회의 수장격인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주도했다.

?위원회 성격 논란=위원회가 100대 중.장기 국정과제를 입안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위원회가 정책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동북아위가 S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민간회사인 행담도개발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정부를 대표해 지원 의향서까지 써준 것이 대표적 예다.

청와대 측은 "동북아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위원회는 정책 수립까지만 참여할 뿐 집행은 행정부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지속가능발전위가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마당에 행정부가 위원회의 뜻을 거스르는 집행 방안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몇 개 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자문기구인 위원회가 법령에 의해 구성된 행정부를 대신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에까지 입김을 불어넣는 게 타당한가 하는 논란은 여기서 비롯된다. 일부 위원은 경험이 부족하고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위원회가 관료의 부처 이기주의와 단기 성과주의를 극복하고 민간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위원회를 매도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객관적 감시.견제장치 만들어야=12개 위원회는 정부 예산을 쓰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행담도 개발 외에 감사원이 위원회를 본격적으로 감사한 바가 없다.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위원회는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없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할 수 있지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가능하도록 제한해 놓았다.

이정우 위원장은 최근 정책기획위 홈페이지에 올린 기고문에서 "위원회 상호 간, 그리고 부처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책 수립과정에서 검증을 거칠 뿐 아니라 감사원의 사무 및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원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감시와 견제 장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성대 이창원 교수는 "청와대나 정부의 입김을 직접 받지 않는 기관에서 위원회의 예산과 업무를 감시할 수 있어야 진정한 견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를 주도하는 위원장이나 주요 인사는 재산공개 등 공직자에 준하는 윤리규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정경민.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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