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만 풍성…미동도 안 했던 올해 부동산경기 분양 안된 아파트·주택 총 2만여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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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해 부동산경기는 주택건설업자나 팔려는 사람에겐 최악의 해, 사려는 사람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78년의 8·8조치(부동산투기억제종합대책)이후 79, 80년도 부동산경기가 침체했다고는 하나 올해는 그보다도 훨씬 못해 거의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우선 건축허가동수를 보면 9월말까지의 전국통계가 5만9천7백88동으로 작년 같은 기간 8만5천9백49동의 68.5%에 머물렀다. 이 가운데 주택은 4만1천8백14동으로 작년 6만5천2백64동의 64%였다. 10월 이후 분을 합쳐봐야 작년의 80%정도에 그칠것으로 보인다. 부동산경기가 피크를 이루었던 78년의 절반수준이다.
건축허가면적도 9월말현재 모두 1천5백97만 평방m(4백84만평)로 작년 2천68만6천평방m(6백26만8천평)의 77%. 이 가운데 주택용은 8백6만1천평방m (2백44만2천평)로 작년 1천2백15만8천평방m(3백68만4천평)의 66.3%에 불과했다.
집거래가 워낙 없는 데다 집값이싸서 집을 안지은것이다.
또 올해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집을 지은 것도 아니다. 허가만 받아놓고 착공하지 않은 것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경기가 침체되니 값이 안 오른다는 장점도 있으나 물량부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주택난을 심화시킨다는 단점도 있다. 부동산경기는 꾸준해야지 뜨거웠다 차가왔다하면 안 좋은 것이다.
집짓는 숫자만 준 것이 아니다. 지어놓은 집도 팔리지 않아 신축아파트나 단독주택이 이곳저곳에 텅텅 비어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 연초부터 최근까지 팔기 위해 주택공사와 큰 건축업자 64사에서 지은 아파트만도 8만3천9백55가구분이나 된다. 이 가운데 분양이 된 것은 6만8천4백58가구이고 나머지1만5천4백97가구분이 팔리지 않았다. 18.4%가 빈 채로 남아있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주공이 올해 팔아야할 아파트는 5만1천8백78채인데 4만3천5백16채만 분양돼 8천3백62채가 남아있다. 16.1%가 팔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64개 지정건축업체는 모두3만2천77채의 아파트를 지었는데 이중 2만4천9백42채가 팔려 22.2%가 미분양됐다.
여기에 중소주택업체와 개인이 팔려고 지었다가 팔리지 않은 집들이 또 있다.
이것까지 합친다면 올해 말까지 남아있는 미분양 주택 수는 2만채 가까이 될 것이다. 한 채에 2천만∼3천만원씩만 쳐도 4천억∼6천억원이 잠겨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지어놓은 새집만 안 팔리는 것이 아니다. 이사가려고 내놓은 집의 거래도 딱 끊겼다.
올해 거래가 좀 이뤄진 것은 그나마 20∼25평정도의 소형아파트와 단독주택에 불과하다. 30평이 넘는 것은 거의 거래가 안되고 40∼50평이상은 1년 내내 복덕방에 내놔도 대부분 허탕이었다.
특히 기름 값이 두차례나 올라 아파트관리비가 늘어나자 아파트 매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서울강남의 신흥아파트단지는 대부분 3분의1, 심한 곳은 절반가량 집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팔집은 많고 사는사람은 적게 되자 집값은 자연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투기바람이 죽은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는 프리미엄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아파트가 오히려 분양값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6월30일 아파트부조리를 없앤다는 이유로 전용면적 25평이상에 대해서는 분양가격을 자유화시켰다.
그러자 일부민영업자들이 평당분양가를 1백38만원 이상 받았으며 이것이 물의를 빚자 평당 1백30만원 미만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불경기바람에 아파트 값은 계속 떨어져 신규 분양된 고급아파트마다 1천만∼2천만원씩 불었던 프리미엄이 없어지고 평당 1백만원 미만의 값으로도 살 수 있게 됐다.
아파트전세값도 내렸다. 보통 아파트시세의 3분의1하던 전세값은 4분의1선까지 떨어진 곳이 허다하다. 13평의 경우 대개 6백만원정도했으나 최근4백50만원정도, 30∼31평의 경우 1천만원쯤 주어야했으나 최근에는 8백만원정도로 떨어진 것이다.
단독주택값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물의 위치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보합세거나 값이 내렸다.
워낙 경기가 없으니 꼭 팔아야할 경우에는 당초 생각했던 값보다 낮춰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시중 소개업자들의 말을 빌면 평균 잡아 10%이상 값이 내렸다는 것이다. 부동산값이 내린 것은 건축업자나 소유주에게는 가슴아픈 일이나 집을 새로 장만하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 올해 집을 산 사람들은 풍성한 매물 속에서 골라가며 비교적 싸게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부동산경기는 단순히 주택문제뿐 아니라 시멘트·타일·목재·벽돌·골재 등 관련산업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건설업 내지 전체산업계가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와 전경련에서 1가구2주택 이상에 대한 양도소득세 완화 내지는 철폐를 소리높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는 투기가 없어졌다하나 양도소득세 등을 없애면 다시 투기가 번질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풀 수는 없고 제한적인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태도다.
이에 따라 지난6월26일 양도소득세탄력세율 적용기간을 늘리고 부동산거래의 자금출저조사와 특정지역을 해제하는 등 조치를 하고 최근에는 수요자 자금융자책까지 내놨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경기는 풀리지 않고 결국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최근의 부동산경기 침체는 워낙 소득에 비해 높이 오른 집값에 근본적 원인이 있으므로 그것이 풀리려면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집값은 안정된 채 소득이 계속 높아져 집이 필요한 사람이 집을 살 수 없거나 파격적으로 좋은 주택금융제도가 나와야만 부동산경기가 다시 꿈틀거릴 수 있을 것이다. <신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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