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철씨 프로야구총재|색깔만 바뀐「유니폼」…야구와는 오랜 인연|고교때 4번타자가 4성장군 꿈이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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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니폼 인생. 30년동안 입었던 군복을 벗었더니 현란한 원색의 프로야구 유니폼으로 바꿔입게 될줄이야.
『일본미야자끼(궁기)상고시설 투수와 1루수를 했지요.
지금은 나이가 먹어 조금 줄어들었지만 키가 1m88cm이니 꼭 어울리는 야구선수였다고 자부합니다.
키가 크니 투수때는 위에서 내려꽂는 오버드로였고 1루수를 맡으면 내야수들이 좋아했지요.
높게 던져도 쉽게 잡아냈으니까요.
한창때니까 힘도있어 팀의 중심인 4번타자로, 그래도 큰것(장타)깨나 노렸읍니다.』
62년 육군본부인사참모때 당시 명성을 떨치던 육군야구팀의 부장을 맡았다.
미야자끼상고때 선수시절을 겪은후 20년만에 또 방망이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이 두 번의 인생과정이 4성장군으로 떠난 그를 다시 프로야구 총재라는 새로운 유니폼을 입게 만든 계기다.
『커미셔너란 사실 나도 생소한 이름입니다.
반공이 국가적으로 필연적 당위라면 프로야구는 인위적으로라도 당위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젊음의 패기와 정열에다 순수한 향토애를 발판으로한 국민화합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같은 큰나라, 일본같이 경제적안정을 갖고온 나라를 나는 그렇게 부러워하지만은 않읍니다.
가정이 화평한 것이 근원이되듯이 나라가크건작건간에 국민적화합이 이뤄질 수 있는 나라가 안녕이 있을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프로야구가 국민적 화합을위한 국가안녕의 일조가 된다는데에 확신을 갖고 있읍니다.』
국방부장관을 지냈다해서 장관, 그리고 4성장관이었기에 장군, 또 반공연맹 이사장이어서 이사장, 거기에다 프로야구위원회의 총재등 이름석자밑에 직함이 많아 칭하기도 바쁘다.
그만큼 화려했던 경력과 지금도 바삐 움직이고 있는 생활임을 알수 있다.
숱한 명령에 살고 죽는 30년의 생호라속에서도 항상 자기보다 부하들의 입장부터 생각해 왔다.
그래서 온유한 지휘관, 신사로 불려졌다.
이런 그의 생활철학은 프로야구총재로 변신했어도 마찬가지다.
커미셔너가 6개구단을 위해 있는것이지 자기를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객전도라는 말에는 가벼운 흥분까지한다.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프로야구구단주들은 커니셔너를위시한 프로야구위원회가 너무 비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시하곤 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때문에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을앞두고 올림픽경기종목이 침체하지 않을까 걱정들을합니다.
청소년들이 돈을 많이 준다는 야구만 하게될것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인간의 소질은 다 똑같지가 않습니다.
내가 30년을 군복을 입었듯이 각자의 갈길은 꼭 같지가 않지요.』<체육부장 노진호>

<약력>1942년 경남양산군동면소송리에서 출생. 46년 육사졸(1기), 62년육군야구부장, 66년 1군사령관, 69년 육군참모총장, 72년전역·대통령안보담당특별보좌관, 73년부터 4년동안 국방부장관으로 재식. 김성은장관에이어 두 번째 장수장관. 지난4월 반공연맹이사장으로 취임한후 프로야구 첫 커미셔너(총재)가 됐다.<컷. 박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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