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약할때 순행잦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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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삼국시대 왕의 지방출장이었던 순행의 빈도는 왕권의 강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최근신형직교수(이대)는『순행을 통해본 망량시대의 왕』에서 순행은 왕권의 불안정과 사회혼란기에 집중되는 정치적출장이었다고주장했다(『한국학보』25집).
『삼국사기』「본기」내용을 분석한 신교수는 삼국시대의 왕은 총1백15명, 평균재위기간22년으로 이들은 장년기에 왕이 되어 정책추진에 있어 보수적인 현상유지나 전왕의 정책답습에 충실하였다고지적했다.
『삼국사기』에는 총 1백35회의. 순행기록이 있는데, 신라는 8∼9세기에 집중된 반면 고구려와 백제는 1∼3세기에 빈번하였다.
신라의 52회 기록중 1∼2월에 집중된 것은 왕이 연초에 자신의 정치에 대한 확인과 의견청취를 위한 순행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신라말의 국학과 사찰순행이 주목되는데, 왕의 이러한 유불에의 귀의와 애착은 새로운 사회로의 모색이 위로부터 시도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고구려는 47회의 순행기록중 40%가 수렵이었다. 원래 궁술은 고대왕의 필수요건이며 그 자신이 신의 아들임을 증명해주는 근거가 되어왔다. 백제의 경우도 6할이 넘는데 이는 양국의 역사적 연계성과 문화·혈통상의 유사성을 보게한다. 대개 1∼2세기에 집중된 것은 북방민족과의 대결과 영토확장에 따르는 군사적·정치적 의미도 생각할수 있다.
또 고구려왕은 반드시 졸본의 시조묘에서 제사를 거행했는데 이러한 시조묘에 대한 강렬한 의식은 부단한 외침속에서 유지한 종묘사직에 대한 투철한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백제의 경우는 36회. 정치적 이유로는 축성(독려·기념)과 관계된 것이 많았는데 이는 왕권이 약했던 백제사회의 성격과 그 취약성을 반영한다.
신교수는 따라서『삼국초기와 통일신라말에 집중적인 순행이 나타난것은 우연이아니라』 고 지적하면서『왕권이 약하고 정치가 어려울때 순행이 집중되었으나 삼국은 직접적인 순행동기에서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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