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로 포장된 가토의 궤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현기
도쿄 총국장

산케이신문은 10일 1면에 한국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전 서울지국장이 쓴 장문의 ‘수기’를 실었다. 그는 서두에서 “내 마음은 한국의 맑은 가을 하늘 같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의 최대 문제인 ‘언론자유에 대한 협량(狹量·도량이 좁다)’을 몸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아무리 협량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수기는 수긍하기 어려웠다.

 그는 “10월 2일 세 번째 조사에서 검사가 ‘(세월호 사고 당일의) 대통령 소재 문제가 (한국 내에서) 금기시돼 있는데 그걸 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난 이 말에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일본에선 매일 상세히 공개되는 국가 지도자 동정이 ‘금기’란 것이다. 금기를 건드린 자는 절대 용서 않겠다는 정권의 뜻을 여실히 보여주는 발언이었다”고 했다. 가토는 교묘하게 괄호를 이용, 마치 한국에서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행적을 논하는 것이 금기인 것처럼 오도했다. 한국 지도자의 동정은 시시콜콜 공개되지 않는다. 365일 그렇다. 한국뿐 아니다. 미국·영국 등도 세세히 일반에 일정을 공개 않는다. “일본과 다르다”는 이유로 ‘정권의 뜻’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산케이신문 1면에 실린 가토 다쓰야의 수기.

 그는 또 “청와대 해외언론 담당 보도관이 8월 5일 전화해 ‘확인도 하지 않고 게재했다’고 말했는데, 청와대는 7월 차기 주일 한국대사 내정 기사와 관련 엠바고(보도 자제 요청)를 어겼다며 산케이의 1년 출입금지(취재거부)를 통보했다”고 했다. 출입금지 상태라 사실 확인을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런 ‘개인사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기사 관련 발언은 청와대뿐 아니라 이미 국회에 다 공개돼 있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소송을 남발하는 박 정권에 한국 국내에선 이미 위축, 영합하고 있는 듯한 보도가 엿보인다. 박 정권은 도대체 언제까지 미디어에 대한 탄압적 자세를 계속할 것이냐”고 주장했다. 한국만큼 자유롭게 정권을 비판하는 나라도 드물다는 건 대다수 일본 기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가토 전 지국장도 특파원 재임 3년 동안 제대로 한국 신문을 봤다면 알 것이다. 지면에 정권 비판 기사가 없는 건 오히려 아베 정권 아래의 산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검찰의 기소 결정은 잘못됐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아무리 기사에 문제가 있다 해도 글로벌한 시각에서 판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산케이는 분명 지나쳤다. 언론의 자유는 공정보도의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설사 비방할 의도가 없었다 해도 기사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유감’ 한마디라도 표명하는 게 옳다. 하지만 산케이신문 어디를 봐도 ‘사과’나 ‘유감’은 보이지 않는다. ‘궤변’만 반복될 뿐이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