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신문 혁신은 신뢰도 향상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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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종이신문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크다. 종이신문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신문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와 세계 에디터 포럼도 이런 위기 상황을 재확인하면서 신문의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주요 신문들은 떠나가는 젊은 층을 붙잡기 위해 신문의 판형을 바꾸고 가격을 낮추고 사진과 그래픽을 늘리는 등 갖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신문의 외양을 바꾸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꾸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위기라고 부를 것까지도 없다. 문제의 본질은 뉴스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 객관성과 균형성을 상실한 뉴스, 속보 경쟁에 휘말려 사실 확인조차 안 된 뉴스, 그리고 선정주의에 빠져 독자의 시선 끌기에만 급급한 뉴스가 범람하는 한 신문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문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지 못할 때 독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신문에 대해 신뢰를 잃은 독자들은 미련 없이 떠난다. 신문이 아니더라도 뉴스를 접할 수 있는 매체를 인터넷상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신문의 신뢰도는 어떠한가. 최근의 여러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신문의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아직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문뿐 아니라 방송의 신뢰도까지 감소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모든 뉴스 매체의 신뢰도가 동반 하락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보수신문의 신뢰도 저하가 진보신문의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종이신문의 신뢰도 감소가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의 신뢰도 증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국민은 언론 전반에 대해 신뢰를 주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분쟁의 해결이 어렵듯이 국민에게서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는 뉴스 매체가 없는 우리 사회는 갈등 해소와 사회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이 총체적으로 신뢰도 위기에 빠져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난 수년간 정권과 보수 매체 간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매체들 간의 전쟁이 계속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흠집을 잡고 깎아내리기에 열을 올리면서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반성하지 못하는 매체에 독자나 시청자들은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한국 신문의 혁신은 땅에 떨어진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신문개혁이 신문의 신뢰 회복을 자동으로 보장해 줄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제도의 개선으로 이룩할 수 있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다. 그럴듯한 명분을 지닌 제도라 하더라도 의도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않던 부정적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일례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신문사가 어떻게 독립성을 유지하며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언론인 스스로가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독자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 매체의 확산으로 어느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지만 누구나가 '전문적인' 저널리스트가 되지는 못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사실 전달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전문적인 저널리스트가 신문 신뢰성 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