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써준 시로 백일장 … 한의대 입학 '스펙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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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학생을 합격시키기 위해 ‘스펙’을 조작한 교사와 학부모 등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12년과 2013년 대학입시에서 수상경력·봉사활동·해외체험 등을 허위로 작성한 서류를 제출해 부정 입학한 혐의(업무 방해)로 대학생 손모(20)씨와 손씨의 어머니 이모(49)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8일 밝혔다. 또 이씨에게서 금품을 받고 가짜 스펙을 만들 수 있도록 도운 혐의로 민모(57·구속)씨와 권모씨(55) 등 고교 교사 3명도 함께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입시 사기극’이 시작된 건 손씨가 고교 2학년이던 2010년이다. 이씨는 큰딸의 입시 상담을 해 줬던 서울 A여고 국어교사 민씨를 찾아가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는 방법을 물었다. 민씨가 제안한 비법은 간단했다. 조작을 해서라도 상을 많이 탄 뒤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민씨는 같은 해 10월 ‘한글날 기념 전국 백일장 및 미술대회’를 앞두고 자신이 쓴 시 4편을 이씨에게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이를 원고지에 옮겨 적어 냈고 손씨는 금상을 받았다. 한 달 뒤 기후변화 관련 발표대회와 이듬해 6월 토론대회에서도 조작이 이어졌다고 경찰은 말했다. 손씨가 다니던 서울 B고교 교사 권씨가 다른 학생을 손씨 이름으로 내보내 상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봉사·해외활동까지 조작됐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교사 민씨는 한 병원 관계자를 통해 손씨 봉사활동 실적을 121시간으로 부풀리도록 도왔다. 또 이씨는 아들이 영국·노르웨이 등을 다녀왔다는 허위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손씨는 2012년 한 사립대에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했다가 자퇴한 뒤 이듬해 서울 유명 사립대 한의예과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합격했다. 국내 봉사활동과 해외활동 기간이 겹치는 등 허위 작성 흔적이 있었지만 두 대학은 걸러내지 못했다. 손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올 초 돌연 대학을 휴학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대학 측은 손씨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입학 취소를 검토할 방침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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