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부시의 고민거리 '終戰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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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에서 돌아온 공수부대원들이 부인과 애인을 얼싸안고 있는 사진이 지난 26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크게 실렸다. 미 방송들도 '개선장군'들과 가족들의 밝은 얼굴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돌아온다는 것은 전쟁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아직도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를 완전히 장악했지만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WMD)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사담 후세인의 생사도 모르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미적거리기도 곤란하다고 판단한 백악관은 이르면 이번 주 중 종전을 선언할 방침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전 선언 장소와 문안을 놓고도 고심하고 있다.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개전 선언을 했던 것과 달리 종전 선언은 보다 자연스러운 형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걸프해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항공모함 선상에서 군인들을 격려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용어 선택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 '승리(victory)'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백악관 소식통의 전언이다.

후세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시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서두르는 건 국민의 관심을 경제로 돌려 재선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2년 이상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둘러 종전을 선언함으로써 전쟁만 하는 정부가 아니라 경제 회생에도 신경쓰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12년 전 걸프전에서 이기고도 경제를 못 챙겨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부시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여전히 전쟁에 비중을 둘 것 같다. 그는 종전 선언에서 '전투(combat)'는 끝났지만 '전쟁(war)'은 계속된다"는 점을 분명히 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부시의 대통령 재임 중 미국의 국정은 전쟁으로 국가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경제를 챙기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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