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들도 '복지 파산'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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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내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62만 명에 대한 보육료 지원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재정난을 이유로 내년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엔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급증하는 복지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며 ‘복지 디폴트(지급 불능)’ 선언을 예고했다. 세수가 대폭 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무상보육·무상급식·기초연금 등 무상복지를 확대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정부와 지자체·교육청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 총 3조9284억원 중 어린이집 보육료에 해당하는 2조1429억원의 편성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치원은 교육감 소관이지만 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까지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면 교육재정 악화를 초래한다”며 “누리과정과 초등돌봄교실 예산은 국가가 부담하라”고 주장했다. 지자체와 분담하던 누리과정 예산은 내년부터 교육청이 전액 부담하게 된다. 게다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재원 마련용 지방채를 발행하느라 진 빚이 3조원에 달한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도 기초연금 전액을 국비로 지원하는 등 대책이 없으면 지방 정부가 파산할 처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추가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측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확대 요구에 대해 “누리과정 예산을 내년부터 교육청이 맡기로 2012년 이미 합의했다”며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정부 부채도 464조원에 달해 국고 지원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감협의회 측은 “학급당 학생 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느라 교사 수는 오히려 늘었고 인건비도 올랐다”며 “무상보육 때문에 학생 교육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무상급식 역시 교육청 재정에 주요 압박 요인이지만 진보교육감이 다수인 교육감협의회는 이 예산은 문제 삼지 않았다. 지자체도 형편이 열악해 244개 지자체 중 127개가 자체 수입만으로 인건비도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자체·교육청 재정난의 원인은 들어오는 재원이 줄어서다.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지방세 징수액은 53조8000억원(잠정)인데, 2012년(53조9000억원)까지 증가하다 브레이크가 걸렸다. 경기 침체로 지방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취득세·재산세는 물론 소득세·소비세 등이 감소해서다. 교육청 예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국세의 20.27%)도 지난해 40조8680억원에서 올해 39조5206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지자체의 사회복지 예산은 2007년 17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35조원까지 뛰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불요불급한 무상교육 예산부터 줄이고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교육 복지사업은 늘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비해 비과세 감면 축소나 증세 논의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며 "세금을 더 걷든 복지 혜택을 줄이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때”라고 말했다.

김기환·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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